"쌤 예방접종 빨리 하고 싶어요?"
원장님이 수술하면서,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 옆에 서서 보고 있는 저에게 물어보십니다.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자면, 1년 차 인턴 수의사들이 병원에서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예방접종"입니다.
동물병원의 예방접종은 사람병원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사람병원에서는 정말 딱 예방접종만 하고 백신 부작용이나 그밖에 주의사항을 잠깐 설명하고 끝입니다.
그러나, 동물병원의 예방접종은 보호자들이 온 김에 보는 진료와 그동안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질의 및 상담 코스로 자연스럽게 잇는 통로가 됩니다.
그러니 예방접종을 시작한다는 것은 보호자를 대면하여 즉흥적인 진료와 돌발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조금 쉽게 다시 말하자면 예방접종을 한다는 것은 능숙하지는 않더라도 이제 수의사로서 제대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원장님 입장에서도 전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보호자 상대를 맡길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됐다고 판단했을 때 예방접종을 시작하도록 합니다.
그 질문을 받고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내가 준비가 됐다는 의미일까?' '준비는 아직 안 됐지만 빨리 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한 질문일까?'
"예방접종 들어가면 실력이 빨리 늘 것 같습니다"
순간의 정적이 흐른 뒤 아직 준비는 완벽히 되지 않았지만, 빨리 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애매한 답변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질문을 받고 나서, '다음 주부터는 예방접종 들어가겠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떨리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주, 두 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말씀이 없으십니다. 완벽한 준비라는 것은 없기에 곧 시작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때 그 대답이 좀 부족했단 생각이 듭니다.
'더 적극적인 말로 내 열정과 자세를 표현했다면 이미 진즉 진료실을 드나들고 있지 않을까?' 뒤늦은 후회와 함께 언제 또 질문이 들어올지 모르니 속으로 몇 번 연습해 봅니다.
"네 빨리 하고 싶습니다! 당장 내일, 아니 바로 지금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준비 많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