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임상 해보니까 어떠세요? 맞으세요?"
1월 1일부터 임상 수의사로 일했으니 2개월 정도 되어가는데, 저보다 10살은 더 어린, 그러나 까마득한 임상 선배들께서 저에게 물어보십니다.
"맞고 안 맞고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건 저한테 별로 안 중요해요. 임상에 저를 맞춰가야죠"
제 대답은 이랬습니다. 젊은 친구들은 제 말을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솔직한 현재의 제 생각이자 의지의 표현입니다.
완벽히 들어맞는 일은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10년이 넘도록 직장생활을 했지만, 이것이 나와 꼭 잘 맞는 천직이라고 느끼며 일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감히 이야기하자면) 제가 했던 일도 그렇고, 무슨 일이든 너무도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종합 세트 같은 거라,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이라고 함부로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제가 과거 어떤 부서에서 맡은 일은 보람도 느낄 수 있고 성취감도 누릴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민한 민원인들을 대하는 일도 함께 해야 해서 정말 곤욕스러웠습니다.
또 다른 부서에서는 현장 출장을 많이 다녔습니다.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또래의 남자 직원들과 차 타고 돌아다니며 신나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피하고 싶은 위험천만한 상황을 자주 만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아주 편한 곳에서 일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타일이 다른 동료와 합을 맞추느라 참 애먹었습니다.
동물병원에서 소동물 임상 일을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다 보면 재미있고, 보람을 느끼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든 일도 분명 생길 테고, 보호자나 동료들과 부딪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 맞고 안맞고를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내가 앞으로 이 일을 하기로 정했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일을 함에 있어 필요한 부분을 빠르게 채울 수 있게 노력해야 합니다.
긴 경력을 단칼에 자르고 배수의 진을 친 40대 가장의 결연함이 드러납니다. 스스로 보기에도 참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소중함을 절절히 느끼며, 충만한 의지를 담은 다짐을 외치며 사는 오늘이 즐겁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누군가 저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대답할 수 있도록 만들 것입니다.
"맞는 부분도 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늦게나마 이 일을 시작한 것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