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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일맨 Feb 03. 2024

수육 돼지고기 수술

"매듭이 잘 안 됐어요. 풀릴 것 같은데…"

"아… 제가 이렇게 못할 줄 몰랐어요~"


우리 병원의 선생님 한 분이 자신이 중성화 수술 해보겠다고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그분은 다른 곳에서 인턴생활을 한 뒤 잠시 쉬다가 저보다 한 달 정도 앞서서 우리 병원에서 일하게 된 분입니다.


분과 진료를 하는 큰 병원에서는 인턴에게 수술 기회는 거의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능숙하지는 못할지라도 듣고 본 풍월이 있기에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절제나 봉합이 예상보다 잘 되지 않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고년차 샘들의 친절한 코치 덕에 좀 더뎠지만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끝나고 나선 자기가 이 정도로 헤맬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다들 어린 햇병아리 수의사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벌벌 떠는 모습에서 자신의 옛 모습을 추억하는 듯 여유 있게 바라봅니다. 그러고는 한 마디씩 던집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자꾸 하다 보면 늘어요"


그러나 그 상황에서 웃을 수만은 없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마치 몇 달 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같이 긴장하며 지켜보았습니다. 수술이 끝나고는 같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집에 봉합사 몇 개 가져가서 연습해야겠다는 그 샘의 말을 듣고는 저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쉬는 수요일 동네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수육용 전지 한 덩이를 샀습니다.


두꺼운 껍데기를 블레이드로 가르고, 가위로 둔성분리를 한 다음 안쪽 근육층도 주욱 쨉니다. 자, 이제 봉합할 차례입니다. 수술하는 손을 따라 연습했던 감을 토대로 한 땀 한 땀 실을 넣고 매듭을 짓습니다.


아주 어렵진 않습니다. 능숙하진 않지만 또 그럭저럭 할 만한 것 같습니다. 어느덧 예쁘지도 않고 간격도 일정하지는 않지만 돼지고기 수술이 끝났습니다.

그래도 오늘 조금 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합니다. 실전은 연습과 분명 다르겠지만, 연습을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요.


배가 고파옵니다.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입니다. 저녁 메뉴는 당연히 돼지고기 수육입니다. 미리 물도 끓여놓았으니 풍덩 넣고 푹 삶기만 하면 됩니다.


'아… 참 실밥 뽑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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