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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일맨 Jan 24. 2024

때 타겠다

뭐든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싶은 풋내기 1년 차 수의사는 처치실 한 공간을 차지하고 서있습니다. 맘 속의 의욕은 제대로 꺼내놓지도 못하고 약간은 힘들어 보이는 기색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나름 바쁘게 스캔하는 중입니다.


"선생님이 얘 라인 좀 잡아주시겠어요?"


원장님은 큼직한 개를 끌고 처치실로 들어오면서 내 눈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요. 해보겠습니다!"


아직 능숙하지 않고 내 환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 이런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무조건 콜을 외칩니다. 작고 털이 없는 애들은 앞다리 정맥혈관이 잘 보여서 몇 번 성공했지만 이 친구는 쉽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덩치가 커서 처치대 위에 올릴 수도 없고 바닥에서 구부정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간호사 쌤이 팔 위쪽을 꽉 잡아 혈관을 노장시켜 줍니다. 통통 튀는 혈관의 탄력성을 느끼며 카테터를 어디로 찌르면 혈관 속으로 예쁘게 집어넣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꽤나 넓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잘하나 지켜보고 있는데 그 눈길을 신경 쓸 여유도 없습니다. 많지 않은 기회를 잡았으니 반드시 성공시켜서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내보이고 싶습니다. '바로 여기다!' 확신을 얻기 위해 자꾸 만지작거리며 영점을 잡습니다.


"때 타겠다…"


계속 만지며 확인하고 있는 나를 보고 원장님이 한 마디 툭 던져놓고 가십니다. 속도에 살짝 압박감을 느낀 저는 적당한 곳으로 찔러봅니다. 아… 붉은색으로 뭔가 맺히는 게 없습니다.


"여기가 혈관인데 어디에 찔러요?"


다시 와서 원장님이 코치해 주십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넣으니 피가 나옵니다. 휴…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려웠지만 결국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다행입니다. 한 번 두 번 성공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이런 일쯤은 가볍게 해내는 날이 오겠지요.


바쁠 뿐 아니라 아픈 아이들을 다루는 일이니 "신속정확"이 요구되는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내 손이든, 모르는 사람에게 팔을 내준 그 친구이든 때타지 않도록 기술을 연마해야겠습니다. 갈 길이 멉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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