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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일맨 Mar 06. 2024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요?

환자가 너무 많이 와서 도무지 정신을 차리기 힘든 날이면, 원장님이 가끔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


일개 봉직 수의사 입장에서는 하루에 10건을 보나, 100건을 보나 받는 돈은 동일하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의 오너인 원장의 입장은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환자가 많이 올수록 당연히 매출은 높아지는 것입니다.


매출에서 직원들 월급, 월세, 기타 운영비를 제하고 남는 것은 모두 오너의 수입으로 귀결되니까 바쁘면 바쁠수록 많이 버는 셈입니다.


그런데도, 원장님이 환자가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테지요.


또한, 소중한 시간을 내어서 병원에 온 환자를 위해 (밀린 대기 환자들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진찰을 해줄 수 없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이유야 어찌 됐든 앞으로 동물병원을 개원해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는 저에게 있어서 그 말은… 정말 부럽기가 이를 데 없는 말입니다.


저는 '나중에 내 병원을 개원했는데 환자가 안 와서 초조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괜한 부정적인 생각이 가끔 머릿속에 찾아오곤 합니다.


그런데 원장님은 이미 "잘되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데다, 너무 바빠서 환자가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있으니… 정말 행복한 고민인 것 같습니다.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만, 환자 없어서 고민인 병원도 많고, 저 같은 사람도 있어요. 원장님은 그저 감사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할 수만 있다면 말하고 싶습니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잘되면 얼마나 좋을까? 할 수 있어! 아니, 해낼 거야! 아니, 해야만 해!'


부정적 상상을 지워내고, 어떻게든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의지를 다져봅니다. 그리고 미래의 제 환자와 보호자에게 굳은 약속을 해봅니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이 없어도 절대로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말도 안 할게요… 그냥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일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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