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면 바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눈빛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있지 않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아픈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스스로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자격지심에서 기인한 확대해석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저에게 날카로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콕하고 박힙니다.
못 미더운 사람, 답답한 사람, 불안한 사람…
그들의 눈빛에 드러난 저라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것을 보면 저는 또다시, 한 번 더 움츠러듭니다. 안 해도 되는 자책과 한숨이 뒤따릅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당신들도 예전 과거 그 어딘가에는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느냐고… 가시 같은 눈빛에 가슴에 구멍 난 적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도 싶지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것은 전 세계 전 세대 인류가 가진 공통점이기에 말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그래도 자꾸 때린데 또 때리면 울컥해서 마음속에서 크게 외칩니다.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눈빛의 빈도나 강도가 점점 줄고 약하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줄어들다가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고, 제가 하기에 따라 정반대 느낌의 눈빛으로 바뀌어있을 수도 있겠지요…?
몇 분이 그만두는 바람에 최근에 우리 병원에 들어온 간호사 선생님들이 몇 분 있습니다. 새로 들어오신 분들이라 아직 동물에 대해서도, 병원 일에 대해서도 잘 모르십니다.
일이 능숙하지 않으니 느리고 매끄럽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한 발 뒤로 물러나 눈치 보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 그분들 중 한 분이 저와 같이 일하는데 실수를 해서 큰일이 일어날 뻔 했습니다. 수습을 하고 일이 종결된 후에 불안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더군요.
그분의 모습에서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제가 보았던 그 눈빛으로 그를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미 아파하고 있을 사람에게 굳이 더 깊숙한 아픔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는 느꼈을지 모르지만) 눈빛에 위로와 격려를 듬뿍 담아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