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하는 동물병원은 연중무휴입니다. 그래서 이번 설연휴 기간에도 문을 열었습니다. 다만,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인 만큼 전체 인원이 다 근무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연휴 전일인 목요일부터 연휴 다음 날인 화요일까지 총 6일을 3일씩 쪼개어 인원의 반반씩 나와서 일하도록 일정이 짜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기간은 목~토, 3일인데 목요일에는 환자가 좀 많이 찾아왔습니다. 명절 때 차로 장거리 이동하는 경우가 있어 멀미약을 지어가는 분도 있고, 상비약을 미리 챙겨놓는 분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독 그날 장기간 약을 복용하는 환자가 몰렸습니다. 그래서 원장님께서 제게 약 지어달라고 부탁을 많이 하십니다. 게다가 몇 안 되는 수의사들은 각자 진료 보느라 바쁩니다.
결과적으로 저에게 약 짓는 일이 몰립니다. 선생님들이 처방한 것을 보고 용량, 체중, 그리고 복용일 수에 맞게 계산해서 알약을 준비합니다. 제 일은 간호사들이 소분하기 전 중간 과정일 뿐이지만 정신이 없습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쌓인 건들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뒤돌아서니 역시 하얗게 불태우신 원장님 얼굴이 보입니다. 저를 보시더니 한 마디 하십니다.
"선생님, 오늘 뒷모습만 본 것 같네요. 약사인 줄 알았어요"
정말 두 시간이 넘도록 거의 약만 지은 것 같습니다. 손을 보니 허옇고 노란 가루들이 지저분하게 묻어있습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했지만 코 안에 뭔가 걸리적거립니다.
진짜 수의사가 되려면 여러 과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약을 짓는 단순한 일이지만, 하면서 약의 명칭과 성분에 익숙해지고 어떤 약을 어떻게 조합해 사용하는지 강제로 공부를 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오늘과 같이 또 다른 전문직인 (커트라인이 높아 될 수도 없었던) 약사의 삶도 한 번 대충은 살아볼 수 있으니… 이걸…
일석이조라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