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일은 안 하고 딴짓을 합니다. -1
백수 생활 3개월 차. 한가한 것 같은 데 바쁘고, 또 바쁘다고 말하기엔 좀 애매한 생활을 보내는 중이다.
자기 전에 ‘오늘 뭐했나?’ 떠올려보면 마냥 빈둥거린 적이 없었는 데도 특별하게 뭔가 많이 하지는 않은 날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일과는 일을 그만두기 전과 비슷했다. 대신 일과를 1.5배속으로 천천히 즐기고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
시시콜콜 얘기하자면 예전보다 정성스럽게 아침을 차려 먹고, 청소를 더 꼼꼼히 하고, 식물들을 오래도록 돌보고, 요가를 성실하게 수련하고 있다. 몇달 전만 해도 기상과 취침 사이에는 뭘 먹었나 떠올리기 힘든 흐릿한 식사,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업무, 그리고 출근과 퇴근이란 불연속되는 장면 몇 개만이 채우고 있었다. 하루를 느리게 보내는 지금은, 매 순간들을 고스란히 소유하는 마음이 든달까. 순간들은 리듬에 맞춰 춤추듯 연속되는 움직임을 만들었다.
물론 이따금 초조함이 찾아올 때도 있다.
특히 SNS를 후루룩 넘기다 훅 꽂히는 사진 몇 개가 마음을 휘젓는다. 네모난 화면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느닷없이 맞이한 이 마음은 그에 비해 네 모습은 어떠냐고 묻는다. 나를 게으르다고 타박하고, 이러면 안 된다며 들쑤신다.
이 나쁜 친구가 올때면 얼른 훠이훠이 쫓아내는 데, 가끔 실패할 때도 있다. 이 친구는 들볶기 선수인데, 나한테 벌써 변했다며 이게 원하는 삶이냐는 식이었다. 꾸지람에 나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작아졌고, 그럼 또 생긴 틈을 타 ‘시간계산기’를 두드리던 습관까지 끄집어냈다.
돈과 작업물로 치환됐던 시간을 돌아보라며.
그 무렵 일을 할 당시엔 업무가 많을 때면 일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요리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청소하는 시간, 운동하러 갔다 오는데 걸리는 시간,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도 따지곤 했다. 주말이나 한가할 시기에는 셈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버릇이 몸에 단단히 뱄는 지, 바빠지면 다시 점심은 대부분 김밥이나 샌드위치, 저녁은 외식이었다. 때론 바쁨과 무기력이 동시에 와서 어쩔 수 없이 일만 겨우 할 경우도 있었고. 그래도 일이 재밌었기 때문에 그런 생활에 만족했고, 결과물이 하나씩 생길때마다 뿌듯했다. 사람들은 흔히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중요하다 했지만 일도 삶의 일부인데 꼭 나눌 필요가 있나 싶었고 충분히 잘 소화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새 정신차리니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일에 휩쓸려 좋아하는 걸 놓쳤고 몸도 건강하지 못했다. 아! 그래, 그때 한창 생산적인 활동을 최대치로 할 수 있는 시기였음에도 일을 툭 놓았었지. 몸과 맘을 재정비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재나열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고개를 힘차게 좌우로 흔들며 잠식했던 불안감을 발로 뻥 찬다. 당분간 오지 마. 어차피 잊을만하면 올 건 뻔하니까 아예 막진 않을게. 잘가.
백수 생활을 한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무렵,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보통 대중교통에서 뭘 들어도 곧잘 멍때리거나 딴생각에 빠지기 때문에 귀기울여 듣진 못하기 때문에, 그날도 귀에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다가도 이상한 연결고리를 따라 시답잖은 상상을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다 “..시간을 내 맘대로 낭비한다…” 라는 말이, 놀고있는 고막을 흔들었다. 왜 그 말이 나왔는지 앞 뒤 내용은 잊었지만, 긍정의 뉘앙스로 이야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내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건데,라고 생각했다. 마침 시간을 내 맘대로 낭비하고 집에 가는 길에 말이다.
진행자가 포근한 목소리로 단정하게 발음한 이 문장은 흡사 성인의 가르침 같았다.
‘어리석은 자여, 이것이 궁극적 진리니라.’
그 말씀 가슴 깊이 새겨 잘 실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