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부세모 Jan 05. 2022

엄마와 나미

엄마와 나미 (2018.12)


 초겨울 추위와 함께, 서울 타지에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믿었던 딸이 하던 일을 관두고 집에 내려왔다. 내려오기 며칠 전 전화로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전했을 때만 해도,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이것저것 묻고 따졌다. 남산을 걸으며 듣고 있었던 나는 흐릿한 대답만 했고, 신중하게 발을 내딛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는 잔소리는 허공에 흩어져 해질녘 풍경에 더해졌다.

“엄마, 서울 석양이 참 이쁘네.”

전화는 끊겼고, 나는 마저 걸었다.


집에 오니 의외로 별 말이 없으셨다. 전에 둘이 “그냥 애 들쑤시지 말고 잘 쉬다 가게 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식의 대화를 주고받았겠지. 안 봐도 뻔하게 그려졌다.

백수가 된 딸내미는 어째 밖에 바람 한 번 쐬러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고향에 와서 만나는 친구도 없냐?’라는 눈빛을 보내면 눈치 없는 곰인 척했다.

외출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추우니까.

수족냉증이 있는 동물에게 밖은 춥고 위험했다.

몇 날 며칠 먹을 것만 축 내며 달팽이 기어 다니듯 몸뚱이를 거실 바닥에 들러붙은 채로 지냈다. 단, 화장실 갈 때만 빼고. 그렇게 빈둥대던 어느 날 오후, 백수라면 응당 취해야 할 행동과 자세에 싫증이 났다. 생리적 욕구 말고 다른 욕구, ‘운동 좀 해볼까나’ 욕구가 움텄다. 몸을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음악을 유튜브 랜덤으로 틀어놓고 설렁설렁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를 하기엔 카펫은 너무 포근했고, 내 몸은 뻣뻣했으며 음악은 장르를 넘나들었다.   

최소한의 동작을 하면서도 숨 만은 최선을 다해 깊게 들어마시고 내뿜었다.

어울리지 않는 노래가 무작위로 몇 번 더 바뀌었을 때, 주방일을 하고 있던 엄마가 물었다.

“딸, 지금 나오는 노래 제목이 뭐였더라?”

입에선 제목보다 “왜?”라는 말이 먼저 나갔다.

“오랜만에 듣네.”

“왜?” 다시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뒤돌아하던 일만 계속했다.

그녀의 굽은 등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나미의 슬픈 인연.”

엄마가 뭐라 하는 것 같았지만, 그릇이 딸그락 부딪히는 소리에 묻혀 알아듣지 못했다. 대신 나미의 슬픈 인연을 무한반복으로 틀어주었다.

처음 엄마가 물어봤던 노래는 사실 영화 킬리만자로에서 박신양 배우가 부른 슬픈 인연으로 내가 좋아하는 버전이었다.


함께 사는 동안 그녀가 음악을 듣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노래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 생소했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영순씨의 모습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 우리 사이에는 자장가와 푸른 하늘 은하수~ 정도가 음악에 관한 추억이었다. 그녀가 궁금해진 나는 주방일을 마치고 소파에 앉아있는 엄마에게 나미를 좋아했냐고 물었다.


나를 쳐다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네 아빠 아팠을 적에, 서울에서 수술끝나고 좀 나아져서 짐 좀 챙기려고 집에 내려갈 때.. 버스에서 이 노래가 카세트에 있길래 듣고, 끝나면 또 듣고 계속 들었이야.”

나도 엄마를 쳐다보지 못하고 하던 동작을 계속했다.

“울면서 들었는가?”

“아아~니, 그냥 있응게 들었어.”


더 묻고 싶었지만 뭘 물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 오학년인가 육학년인지도 헷갈릴 만큼 오래전에 간의 일부를 떼어내는 수술을 하셨고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 일은 아빠 몸에서 떼어낸 간의 크기만큼, 내 어릴 적 기억의 일부를 차지했고 많은 기억들이 새로운 사건들로 지워지는 동안에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엄마에게는 이 때가 어떻게 각인되어 있는지 살펴본 적이 없다. 이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그랬다. 인간으로서 이해하기엔 너무 가까웠던 걸까. 어려웠던 걸까. 두려웠던 걸까.

관심이 적었던 거다. 그 당시 나에게 관심 대상이 됐던 것들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들이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은 겉으로 보기에 심오해 보였던 것들이었다. 지나고보니 기억도 안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무튼 나에게 엄마란 사람은 복잡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단순한 인간형이었고, 엄마는 늘 엄마였다.


‘카세트로 노랠 들을 때 어땠더라?’

맞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한 곡이 시작될 때까지 짧은 틈이 생긴다.

그 짧은 틈에 앞 곡이 다시 듣고 싶으면 한 곡 감기 버튼을 톡 눌러야 했다.


기껏 마흔이었을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시절, 먼 타지 서울에서 젊은 남편의 수술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버스 한 구석자리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며 네 시간 동안 한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을 엄마를 그려 본다.

톡 다시 톡, 톡 그 동작을 셀 수 없이 반복했을 젊은 여자가 있다.

심야 버스였으니 승객이 별로 없었겠지?

창 밖엔 비가 왔을 까?

노래가 끝날때마다 되감기 버튼을 누른 손가락은 몇 번째 손가락이었을 까?

그 버튼은 왜 누를 수밖에 없었을 까?


아직도 엄마를 잘 모르는 딸은 이후 나미의 슬픈 인연을 들을 때마다 맴도는 질문에 상상을 하며 젊은 시절의 그녀 언저리를 서성인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작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