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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세모 Nov 19. 2022

어쩌다, 고시원 4

유예의 공간에서 생활의 공간으로

법적으로 주택이 아니요. 근린생활시설인 것이다. 단, 고시원으로 쓰이는 용도의 바닥면적이 500m2를 넘으면 숙박시설에 속한다. (건축법 시행령, 별표 1 참고)  간단히 말해 숙박시설은 주거환경보호를 위해 주거지역에 지을 수 없으므로 주거지역엔 고시원을 500m2보다 작게만 지을 수 있다는 말이다.

좀 더 설명하자면 소위 국계법이라 불리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국토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토지를 구분하고 지정했다. 여기서 주거, 상업, 공업, 녹지 등의 지역으로 나뉘고 지역마다 각각 건축할 수 있는 용도를 정해 놓았다.

숙박시설, 유흥주점과 같은 위락시설 등을 집 주변에 지을 수 없는 이유다.

이 또한 “공공복리를 증진시키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렇게 쓰고 난 이후로 오랫동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주거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의 작은 세계를 벗어날 것만 같아서다.

벗어나는 대신 잠시 내려놓는 건 괜찮지 않을까? 자문하며 제 어깨를 토닥일 수밖에 없었다.


고시원의 태생은 자연발생적이었다. 1970년대 절간에서 공부하던 문화가 ‘돼지막’으로 불리던 무허가 하숙집 형태로 변화하며 시작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임시 숙소로서 일렬로 늘어선 5-6개의 1평짜리 방에 책걸상, 침구만 놓인 형태로 고시준비생들 사이에서 이미 이름 나 있었다. 신림동은 1975년 서울대학교가 근처로 이전하면서 노량진은 1970년대 학원산업이 자리 잡으면서, 고시원과 함께 서점, 인쇄소, 독서실, 체력단련실 등 수험생에게 필요한 공간들이 생겨났고 1980년대 현재와 같은 고시촌이 형성됐다. <신림동 청춘 / 서울역사박물관> <노량진 / 서울역사박물관>

가정집을 개조해 하숙방의 형태로 운영된 초기 고시원엔 셰어하우스와 코리빙의 개념을, 고시촌이란 동네에 얽힌 서비스 시설들에서 수평적 호텔의 개념을 엿볼 수 있다.

사용자가 고시생이었다는 점에서 실제 생활모습도 개념이 내포하는 바와 유사했는지 궁금하다. 자료를 보면 이후 수요에 발맞춰 전문적인 고시원들이 지어져 거주환경은 금방 변화했고, 집중력을 흩트리지 않기 위해 옆방 사람과 인사도 하지 않고, 산 중턱 야외 체력장에서는 으어어어 소리를 고래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니 공간의 자본성과 고시생이란 특수성이 연결의 순리를 반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1990년대를 거치며 고시원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원룸, 오피스텔 등이 공급되어 여유가 있는 학생들은 좀 더 나은 주거지를 선택했고 대신 외환위기 이후 취약계층이 고시생의 빈자리를 채웠다.

‘고시원’에 대한 지난 기사들을 찾아봤다.


1986.03.04 동아일보

대학촌 하숙방이 남아돈다

비용 적게 드는 공동자취 독서실 기거든 늘어나

월 10만원 고시원 독방도 인기


1990.02.21 경향신문

싼비용으로 독방쓰는 즐거움

개인주의가 만연한 요즘은 대학생들의 급격한 생활변화로 하숙풍독도 달라지고 있다.


1990.03.29 동아일보

성업 고시원 환경기준 낙제점 많다.

고시생 변사계기로 본 실태 50명 이상 수용 서울에만 2백곳 취업난 심화 지망생 늘자 예약 경쟁까지 “공부지장”거의 인사없이 지내

… 70년대 중반 서울대 주변 신림동 일대에 고시생전용하숙의 형태로 생겨난 이같은 고시원은 신촌, 혜화동, 안암동 등 대학가로 확산, 도심속에 고시촌을 형성해 왔다.

초기에는 단순한 독서실이나 하숙의 형태로 출발한 이들 고시원은 최근에는 50~1백여개의 독방을 갖춘 ‘기업형’으로까지 발전, … 주거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안전대책이 허술한 곳이 많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고시원 변사 사건이 발생한 C고시원의 경우 각 층마다 미로 같은 복도 양옆에 2평 남짓한 독방 20~30여 개가 들어서 있어.. 또 일부 독서실은 좁은 공간에 환기나 채광시설도 없이 벌집 같은… 동작교육구청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고시원이 독서실 허가를 얻어 영업하고 있으나 안전과 최소한의 환경기준 등이 없어 행정지도 및 단속이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1992.02.21 경향신문

서울대 주변을 비롯, 대학가 곳곳에는 대형하숙빌딩인 고시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1993.01.09 경향신문

고시촌 불문율 “서로 아는체 않기”

1인 1평 남짓 공간 … 하숙목적 입주도


1993.12.03 한겨레

독서실, 고시원 대형화재 위험

안전시설 없이 학생 밀집… 전열기구까지 사용. 특히 밤중에는 라면 등 야식을 해결하기 위해 더욱 많이 사용한다. 소화기는 1~2개에 불과한 상태.

시설이 좋은 몇몇 빼고는 너비 80cm 길이 2m 정도의 좁은 개인방으로 되어 있다.


1994.02.04 조선일보

고시원에 직장인 붐빈다.

경쟁시대 생존전략 “시간 벌자”가족 떠나 승진시험 등 준비

교대-강남-양재역-신촌 등 밀집


1994.04.22 조선일보

기회의 땅, 고시촌. 여성들이 몰린다. 고시원들은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만 1만여 명의 수험생이 있다고 추산한다. 이중 여성이 10% 가까이 된다는 것... 그러나 남자들 공부에 방해된다고 여성을 안 받아주는 고시원도 많다. 그래서 시설도 좋고 여성을 받아주는 고시원에 들어가기 위해 2~3달씩 기다리는 예도 있다고 한다.


1995.02.18 한겨레

법대 ‘썰렁’ 고시원 ‘ 북적’ 재학생 절반 이상 사설학원 다녀…


1997.06.23 경향신문

강남 테헤란로에 국내 최초로 1.2평 초미니’ 원룸텔’이 등장했다.


1997.08.04 조선일보

강남 고시원들 때아닌 호황

서울 강남 일대 고시원들이 비고시생 입주자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출퇴근 시간을 아껴 각종 승진시험에도 대비하려는 직장인들이 나날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보통 두 평 남짓한 방 한 칸에 TV와 전화, 침대를 갖추고 있다. 부엌, 욕실, 세탁기는 공동사용한다.

.. 불황시대 살아남기의 한방법… 집살 돈 모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 생각..


1998.08.27 경향신문

‘두 평의 둥지’  강남 일대에 우후죽순. 정작 고시생은 드물고 직장인. 실직자 등 북적.


1998.12.17 경향신문

하숙촌’썰렁’.. 잠만 자는 집, 고시원 등 인기 IMF시대, 지방에서 유학 온 대학생들에게는 2중의 고통이다.


1999.05.03 조선일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서울 유학생 ‘원룸 문화’

… 이화여대 정문 근처 ‘ㅇㅇ고시텔’ 유리 정문 너머 천장과 벽부터 온통 미색으로 푸근하고 세련됐다. … 좁아도 깔끔하고, 간섭받지 않기를 원하는 요즘 학생들 입맛에 맞추다 보니 대학가엔 복도만 남기고 좁은 방을 최대한 들인 ‘변형 원룸’이 확산되고 있다... 샤워가 딸린 화장실을 방방이 갖추거나, 공용으로 설치한 곳도 있다.

개인주의를 신세대 특성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한 서울대생 “취업도 힘든 마당에 공동체 낭만을 찾기란 힘들지요. 사회 경제적 변화는 생각지 않은 채 대학생 성향이 어떠니 하는 것은 단편적 판단입니다.”

… 고시생들은 숙소를 자주 바꾼다. 하루 10시간 넘도록 지루하게 공부만 하다 보니 환경에라도 변화를 주자는 뜻이다. 친구 사귈 기회를 아예 봉쇄하는 효과도 있다…

숙소를 자주 바꾸는 탓에 이들은 ‘메뚜기’로 불리기도 한다.


1999.09.06 동아일보

“고시원은 주택 아닌 여관”판결

법원, “고시원은 부가가치세법상’주택’이 아닌’여관’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야 한다.”


1999.09.10 매일경제

대학생들의 하숙이나 고시원에 대한 선호도가 점차 원룸으로 옮겨가고 있어, 원룸주택 임대사업이 다시 유망 재테크 수단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1.03.14 연합뉴스

‘나홀로’ 직장인들 고시원 숙소로 이용.


2001.07.29 동아일보

고시원 안전관리 ‘엉망’


2001.10.21

서울의 주요 역세권이나 업무시설 밀집지역 주변에 4~5층 규모의 기존 업무시설을 주거용 고시원으로 개조한 이른바 “고시텔”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 보통 건물의 1~2개층에 20~50여실이 들어선다.


2003.01.30 동아일보

서울시, 고시원 불법용도변경 단속

.. 독서실이나 학원으로 허가받은 후 칸막이나 취사장, 개별 화장실 등을 무단 설치한 곳을 우선적으로 집중 단속할 방침이다.


2003.03.17 MBN

… 박 양은 “100만원만 있으면 신분확인 없이 고시원에서 몇 달 동안 살 수 있어 다른 가출한 친구들도 고시원에서 생활한다”고 말했다.

… 고시원 주인들은 허가, 사용승인을 받을 때 근린생활시설로 한 뒤 나중에 경량 칸막이 등을 이용해 각각 6~7평 규모 방을 수십 개 만들어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 서울시 관계자는 “건축법상 고시원 용도가 포함되지 않으면 최근 잇따르고 있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2006.12.01 경향신문

… 신종 업소가 법의 테두리 밖에서 맴돌고 있다. 건축법규에 관련 규정이 없어 제 용도대로 등록할 길이 없다. 고시원이 여관으로, 펜션이 다가구주택으로 둔갑돼 신고된다… 전국 수천 개의 고시원 중 ‘고시원’으로 신고된 곳은 한 곳도 없다. 업주에 따라 원룸이나 여관, 독서실 등으로 신고하고 운영할 수밖에 없다.


기사들은 피식피식 웃기기도 했고, 어이없기도 했으며 애통하기도 했다. 고시원이 등장한 시기의 기사에서 도시와 사회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90년대부터는 고시원 환경과 안전에 대해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이후 대책 마련 필요 기사, 화재사고, 안전사고의 위험, 제도 보완, 고급고시원과 쪽방고시원, 다시 화재사고, 각종 사고, 제도 보완 기사들이 가득했다.


고시원 유형이 등장하고 처음으로 법적 규제가 시작된 것은 2003년 소방법 시행규칙에 고시원을 신종 다중이용업소(다중이용업이란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여 피해 발생 우려가 높은 것을 대통령령으로 정해놓은 것) 8개에 포함하고 소방완비증명서 발급을 의무화한 시점부터다. 2006년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 2009년 다중이용업소에 ‘고시원업’ 건축법에 ‘고시원’ 용도가 드디어 신설됐다. **고시원이란 명칭이 공식적으로 합법화됐다.

2010년엔 국토부가 오피스텔, 고시원, 노인복지주택, 기숙사 등 주택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실상 주거기능을 제공하는 주거유형을 ‘준주택’으로 정의하였다. 이미 1~2인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다양한 시설은 증가하나 이에 대한 기준이 부재하거나 미흡했기 때문이다.***


앞의 법에 대한 이야기는 흐리게 후루룩 흘겨도 괜찮다. 간단히 말해 20 후에서야 규제할  있는 장치들이 생겼다는 소리니까. 이후 현재까지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제도를 보완, 법을 개정해오고 있다.


(이어서..)


참고문헌

<신림동 청춘 / 서울역사박물관>*

<노량진 /  서울역사박물관>**

<고시원의 공급, 운영관리 실태와 향후 정책 방향 / 진미윤, 최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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