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부세모 Nov 28. 2022

어쩌다, 고시원 5

유예의 공간에서 생활의 공간으로

앞의 법에 대한 이야기는 흐리게 후루룩 흘겨도 괜찮다. 간단히 말해 20년 후에서야 규제할 수 있는 장치들이 생겼다는 소리니까. 이후 현재까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제도를 보완하고 개정해오고 있다.

법이 변명을 한다면 이랬을까? ‘여러분, 사회변화의 속도와 방향은 예상을 초월한답니다..’


흐름상 복도 폭이 넓어지고, 스프링클러 설치, CCTV 설치 의무화하는 등 취약했던 안전에 중점적이었다.

대신 다중이용업소법 시행령에 따르면 여전히 고시원업이란, “구획된 실(室) 안에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숙박 또는 숙식을 제공하는 형태의 영업”이라 각 실별로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책상 등)을 갖추어야 하나 독립된 주거시설로 이용할 수 없도록 욕조, 취사시설 설치는 금한다.


하지만 고시생의 임시거처로 시작한 고시원은 비약하자면 현재 “학습자” 고시생이 거의 없다.


고시원은 주택법에선 주택에 준하는 시설인 준주택 (소방법에선 다중이용업소, 건축법에선 근린생활시설 중 다중생활시설)으로 주택과는 구별해 주거형태를 갖지 않지만 버젓이 장기 투숙하는 주거 공간으로 쓰인다.

프리미엄 고시원들도 생겼다지만, 지금도 고시원은 쪽방과 함께 별도의 신고와 보증금 없이 싼 값으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거처이다.

최후의 거처를 전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 또한 저렴해서 더 나은 거처로 도약하기 어렵다… 고 나는 생각한다.

싼 값의 노동 시간 덕에 빈곤해지는 여유 시간과 열악한 주거환경이 건강한 일상을 방해한다… 고 나는 바라본다.

방해받은 일상이 평범한 행복을 유예시키고, 오늘의 고단함이 미래에 대한 고민을 유예시킨다… 고 나는 알 수 없는 고충을 헤아려본다.


헌법 제35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예외여도 괜찮은 걸까. 고시원은 정말 필요할까?

내가 20대 초 학생 신분이 아니라 부모 도움 없이 지방에서 상경한 노동자였다면 선택할 수 있는 첫 주거지는 고시원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첫 주거지는 잠잘 곳으로 사용하는 일시적 장소이자 벗어나야 할 공간으로 인식했을 터다. 불안정한 주거상태를 안은 1인 가구가 사용할 저렴한 공간으로서 고시원은 정말 필요한 걸까?  

꼭 고시원이 그 역할을 해야만 하는 걸까?


내가 살았던 고시원이 있는 블록에는 모텔, 호텔이 함께 혼재했고, 바로 옆 블록에는 방이중학교가 있었다. 근처 블록에도 리빙텔, 고시텔, 모텔, 호텔 등 많은 텔들이 뒤섞여 있었다. 당시엔 이게 참 의아했다. 아무튼 근처로 재수생이 많이 살았다.

텔미텔미텔미유러브미? 란 시절의 노래를 떠올리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궁금해서 지도를 확인해보니, 남아 있는 모텔 사이로 높은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레지던스, 아파트가 들어서있었다.


서울 낯선 곳 유일한 내 공간이었던 작고 소중한 방엔 외부창 외에 복도로 난 창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창은  바깥의 햇살 대신 복도의 불빛과 소음을 전달했다. 물론 방 안의 빛과 소리도 넘어갈 수밖에 없어서 거주자들은 더 조심해야 했지만 없으면 아쉬웠을 터다. 밖의 인기척으로 내가 나갈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으니까.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귀 쫑긋 정도 수고는 매일 있는 일이었다.


하숙, 기숙사, 고시원과 같은 공동생활은 원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를 공유하게 된다. 빛, 소음, 냄새들부터 시작해서 때로 생활 패턴까지 노출된다.

“뭐 어때?.” 가 가능한 사람이야 뭐든 상관없겠지만, 사람마다 프라이버시의 설정이 다르므로 공동으로 쓰는 숙소를 써야 할 때 민감해질 수 있는 문제다. 그래도 하숙은 소수의 인원이 친분을 쌓아 관계가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장소고, 기숙사는 같은 학교 학생 신분이라는 폐쇄적 사회집단에서 유대가 발생할 수 있어 개개인에 따라 공유할 수 있는 범위도 그만큼 넓어질 여지가 있다. 하지만 고시원은 거주자들이 관계를 맺는다는 게 … 어렵다.

고립되지 않고 단절되지 않는 공간을 위해서는 수고와 비용이 든다. 정부의 지원이든, 운영자의 운영이든 공간의 설계든 할 수 있는 수고와 비용을 버무려 고시원이 개과천선하면 지긋지긋한 고시원이란 명칭은 버려도 되지 않을까?


내 방이 있는 층에는 샤워실 3개, 주방이 하나 있었다. 달갑지 않은 일화도 하나 있었다. 한 이성친구가 네가 샤워하고 나오면 나는 향이 남아있다고 했다. 원치 않은 순간 개인의 영역을 침범당해 꺼림칙했으나 빨리 휘발되지 않는 바디워시와 샴푸의 냄새만 원망스러워할 뿐이었다.


몇 가지 불편한 점을 제외하면 고시원 생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곳에 산다고 우울하거나 빨리 벗어나고 싶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자칭 프리미엄 고시원으로 옮긴 이유가 하나 있겠고, 지방에서 온 친구들 대부분이 비슷한 환경에서 지냈으며 학원이라는 매일 가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생활의 끝은 정해져 있어서 곧 자연스럽게 떠날 장소였다. 스무 살 나에겐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니 이곳의 삶은 곧 과거의 경험으로 물러나 도약대 정도로 여겨질 게 다분했다. 젊음은 젊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형편도 경험으로 누릴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래서 젊음은 청춘에게 방패이기도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현실을 견디는 사람들과 지낼 경우에는, 깨닫지도 못한 사이 다른 사람에게 생채기를 내는 무기로 변하기도 한다.

선택지가 하나인 사람과 다양한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공간의 의미가 다를 터이니.


나는 폐쇄공포증과 함께 상상 폐쇄공포증도 있다. 작은 먹방에 내가 있다-라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공기로부터 짓눌려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쪼그라들다가 사라져 버릴  아서 글을 쓰는 동안 가끔씩 호흡을 다스려야만 했다..


혼잡한 도시 인색한 공간에 사는 모두가 무탈하기를 더 나아가 행복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고시원 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