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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세모 Jan 11. 2023

공동생활의 시작, 기숙사 2

새내기, 새내기


기숙사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면 ‘학교나 회사 따위에 딸려 있어 학생이나 사원에게 싼값으로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이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선 ‘학교나 공장 같은 곳에 딸려 있어 그 구성원들이 먹고 잘 수 있도록 마련한 집’이다. 거주의 측면에서 후자의 정의가 전자보다 와닿는다.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공동주택에 속하며, 학교 또는 공장 등의 학생 또는 종업원 등을 위하여 쓰는 것으로서 1개 동의 공동취사시설 이용 세대 수가 전체의 50퍼센트 이상인 것([교육기본법] 제27조 제2항에 따른 학생복지주택 및 [공공주택 특별법] 제2조 1호의 3에 따른 공공매입임대주택 중 독립된 주거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것을 포함한다’)이다. 여기서 ‘싼값’  ‘공동취사시설 이용’  ‘독립된 주거의 형태가 아닌’을 조합해 살피면 기숙사는 ‘경제적이고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로 집의 기능이 흩어져 학생들은 방을 제공받고 화장실과 샤워실, 휴게공간, 식당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조로 되어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때 방의 핵심 역할은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내가 살았던 기숙사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기숙사 생활은 여러 층위에서 공유가 발생하고 그러므로 그 생활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공용 냉장고에선 남은 야식이 사라지고 공용 세탁실에선 말려놓은 빨래가 사라지더라도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사건을 이해함으로써 공동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각 층은 화장실, 샤워실, 휴게실을 함께 썼다. 921동 2층 휴게실은 쉼을 위한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쓰임은 거실을 표방했지만 엄청 편안한 의자라던지 소파는 없었으며 조명은 6000K 환하고 하얀빛이었다.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어서 공간의 의도에 맞춰 우린 마음만 먹으면 그곳에서도 쉴 수 있는 능력을 체득했다. 주말에 약속이 없는 날이면 시간을 맞춰 룸메이트와 휴게실에서 저녁을 먹으며 무도를 즐겼고, 출출한 야밤 꼬드기거나 또는 꼬드김을 당해 시킨 야식을 먹었다. 애써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휴게실 불편한 의자에 앉은 수고는 큰 TV를 보며 박장대소를 하고, 입천장이 다 까질 만큼 바삭하고 새콤달콤한 탕수육을 먹으면서 전부 날아갔다.

샤워실은 화장실과 연결돼서 볼일을 본 다음 다시 복도를 통할 필요 없이 바로 씻으러 갈 수 있었다. 언제나 개인 목욕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씻으러 갔고, 오전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선 샤워부스를 쟁취해야 했다. 방친구(룸메이트) 보다 빨리 준비해야 할 땐 친구가 잠에서 깨지 않길 바라며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사실 산에 사는 새가 가장 일찍 일어나 울어 댄다. ‘학우들아 아침이야.’  

얇은 창을 넘어온 새소리든 방에서 바스락거리고 부스럭 또는 쿵쾅대든   소리에  민감한 성격이라  공간에서 지내는  불편하진 않았지만, 창을 뚫고  산속 겨울 추위는 견디기 어려웠다.

반대로 방을 셰어 하는 일 자체를 괴로워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청결도의 문제, 소음, 빛공해, 냄새, 방친구의 성격 등이 적당히 이해할 수 있는 범주 내에 속해야 하고 범주는 개인의 예민함 정도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여하튼 나름대로 나는 2년 사이 자연스럽게 혼자 지내는 편안함과 함께 지내는 즐거움에 대한 균형, 적당한 배려와 느슨하게 연대하는 법을 배웠다.


하나의 동 생활은 하나의 현관을 공유하면서 시작된다.

정해진 시간 내에서 외부인 출입이 자유로웠고, 다른 학교나 지역 학사와 달리 통금 시간이 없었다. 메리야스와 파자마 차림으로 복도를 거닐다(보통 화장실 가는 길..) 마주치는 남자학우는 같은 층 누군가의 가족이거나 남자 친구이겠거니, 난 민망하지 않아.. 당황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당신일 거야.라는 당당한 마음으로 그들을 지나쳤었다.


때로 우리는 과제나 공부를 늦은 밤까지 하다가 가로등과 교내 건물창들 빛을 사이로 지친 몸을 신선한 공기로 달래며 기숙사로 돌아오곤 했다. 물론 이보다 학교 주변에서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고 나서 버스가 끊긴 하얀 새벽, 음식과 술로 무거운 몸의 무게를 취중 수다로 뱉어내며 속세와 동떨어져 있는 교문을 지나 산을 끼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닐면서 달구경을 하다 어느새  방으로  들아가는 일이 비교할  없을 만큼 많았지만. 도저히 몸뚱이를 옮길  없었던 어떤 날엔 학교 길들이 무빙워크로 변해서 가만히 서있는 데도 앞으로  나아가 기숙사까지 무사히 도착했던 신기한 날도 있었다.


우리가 살았던 기숙사 평면(좌), 심야 주동선(우)


거주 공간은 책상과 침대  사적인 공간부터 내가 쓰는 기숙사방,  ,  , 기숙사 단지, 그리고 캠퍼스라는 공적공간까지 확장됐다. 속세와 동떨어져 있는 학교 내에 있는 기숙사는 자체로 하나의 마을이어서 굳이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 커피, 운동, 모임, 식사, 빨래, 공부, 미용 등이 가능했다.  옛사람들 빨래터에서 주막에서 익숙한 얼굴 만나듯 곳곳에서 우연히 아는 이를 마주칠 때도 있고, 일부러 만나 술과 야식으로 살과 함께 우정을 찌우기도 했다.

뭐니 해도 기숙사의 핵심은 잔디운동장이었다. 2009 9 기숙사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운동장 위에선 축구 말고도 할게 많았다. 뒹구르고 자빠지고 달리고 기고 누워있고 노랠부르고. 적당한 광장만 있으면 어떤수와 창의력을 곱해  활용할  아는 젊은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넘쳐날텐데 주변에 작은 광장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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