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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세모 Jan 22. 2023

본격 자취 생활기

하나의 방, 원룸

위치 : 낙성대역

기간 : 2009.03-2009.08

면적 : 5평

특징 : 원룸

구성원 :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친구

구비된 가구 :  풀옵션이라 불리는 침대, 책상, 싱크대, 냉장고, 창문형 에어컨, 가스레인지


친구가 몰래 방 아래 뿌려 놓은 씨가 눅눅한 바닥에서 새싹을 냈다. 싹은 그새 대왕양파로 자라 장판을 뚫고 쑥쑥 큰다. 양파로만 알았던 대왕양파는 아래로는 양파가, 위로는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다. 구멍 난 장판 걱정에 힘껏 줄기를 당겨보지만 뽑히지 않고 칼로 베려해도 흠집만 날 뿐이었다. 헛된 몸부림에 지친 나는 대왕양파라 이름 붙여진 이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빨갛게 익은 토마토 하나를 따먹었다. 또 하나를 따서 이번엔 벽에 던져보았다. 퍼억 소리와 함께 시쿰한 냄새가 붉게 터졌다. 느닷없이 신이 난 우리는 토마토를 마구잡이로 따서 책꽂이에 침대에 냉장고에 천장, 사방에 던졌다.  엉망으로 물든 방 안에서 근심을 잠시 잊은 채 울긋불긋한 얼굴로 한참을 웃었다.


최근에는 다양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유주거 형태가 여러가지 등장했지만, 당시 학생들에게 주거 선택권은 많지 않았고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는 부족했다. 나 역시 기숙사에 떨어지면서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취방을 구했다.

첫 원룸의 조건은 역시 치안이었다. 몇 개의 방 중에 고른 집은 낙성대역과 학교 셔틀버스정류장과 가깝고, 큰길  바로 뒤 이면 도로에 어둡지 않은 곳이었다.  금액과 공간 점유의 관계는 암묵적으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금액 범위에서는, 화장실도 작고 주방도 작고 냉장고도 작고 건물도 오래됐음에도  ‘1000/38 +8’ 이란 숫자는 괜찮은 선택지였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8만 원 관리비 8만 원 기타 공과금은 별도라는 ‘1000/38 +8’에 동의하고 1년을 계약했다. 이사날짜를 기다리고 있던 차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 학기를 끝내고 교환학생을 가야 했던 친구는 사 개월만 더 같이 사는 거 어때?라고 물어봤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일부 생활은 기숙사의 연장선상에 놓였다.

4-5평 되는 공간에서 나는 옵션으로 있는 침대, 친구는 요를 잠자리로 썼고,  옵션 책상과 싱크대 사이 키티 좌식 책상을 놓고 나란히 앉을 수 있도록 꾸몄다. 역시 허투루 낭비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주방과 냉장고가 딸린 첫 자취방을 얻은 기념으로 우린 날을 잡아 요리를 했다.

요리라니?

엄마는 같이 사는 동안 음식 만드는 걸 알려준 적이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떡피자, 계란프라이, 라면이 전부. 십수 년간 요리도 못하면서 굶어 죽지 않다니. 내 입으로 들어간 음식을 만든 누군가의 수고가 새삼 고마웠다. 친구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자취생을 위한 요리책’을 샀고 레시피대로 재료와 정량, 조리시간을 차근히 딱 딱 맞춰 따라 했다. 그러니 정석대로 맛있었지만 무진장 오래 걸리고 들어가는 재료도 많아 배보다 배꼽이 커져버렸다.


예로 요리책의 레시피 중 감자채볶음은 감자 외에도 넣어야 할 야채는 양파, 파프리카, 당근, 피망 5색 5가지였다. 초보자인 나는 그전까지 먹어본 감자채볶음도 떠올리지 못한 채 저기서 하나라도 빠지면 이상한 맛이 날 거라는 믿음으로 모두 장봐와서 채 썰어 볶았다. 아! 조화로운 맛이구나. 자고로 음식은 수고와 정성과 재료라고 했던가? 먹었던 어떤 감자채볶음보다 우월하게 맛있었다. 이 맛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었지만 알릴 곳이 몇 군데 없어 엄마한테 전화하고, 친구 입에 떠먹이고 남자친구 집에도 보냈다고 한다..

엄마는 깔깔깔 웃었다고 한다.


사실 여기에 사는 동안 음식을 자주 해 먹진 못했다. 좁은 주방이 불편하기도 했고 방을 가득 채우는 음식냄새 때문이기도 했다.  

끼니를 거르는 일은 일상이었다.


살다보니 불편한 점은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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