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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세모 Feb 15. 2023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곳에 있는 2

집이라는 첫 기억, 그냥 집


아빠는 89년 가을, 동네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부터 집 하나를 소개받았다. 낮은 언덕에 적당한 크기의 마당을 가진 이 한옥을 네 식구의 안식처로 점 찍자마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오래된 한옥은 전에 살던 사람들에 의해 이미 몇 군데 변형된 상태였었다. 


시멘트 기와는 전통방식의 기와를 내리고 방수공사를 하고나서 올렸거나 초가였던 지붕을 새마을 지붕개량사업을 통해 바꿨던 걸지도 모른다. 흙이었을 마당은 일부 딱딱한 시멘트 바닥으로, 담장 주변에는 화단을 만들고 끝나는 부분을 따라 붉은 치장벽돌로 비스듬히 쌓아 마당과 경계를 지었다. 연탄으로 바닥을 지필 수 있게 개조하고 입식 부엌도 놓았다. 다진 흙으로 만든 기단과 담장도 시멘트로 탈바꿈시키고 담장에 붙은 작은 건물은 원래 있던 문간채를 부수고 지었거나, 세를 줄 마음에 새로 올렸을 지도 모른다.  


새단장한 모습은 이질적이고 이상했겠지만 우리를 만났을 때 모습은 다행히 시간에 바래어 주변과 애써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흐르는 세월은 위대하다! 인간이 대충 볼품없이 만든 것도 긴 세월 자연의 도움을 받으면 적당히 괜찮아 보이게 된다.  

더 이전 처음 모습은 어땠는지, 누구를 위해 언제 지어져 몇 년이나 버티고 서있는 건지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알 수 없었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집과 멀어져서야 집이 궁금하고 애틋해졌지만, 이곳은 이제 사라졌다. 나도 동생도 타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사이 엄마는 “이러저러해서 누군가에게 넘어가고 그 누군가가 허물고 현대방식의 새 집을 지었다.” 라며 우리에게 다음 방학부턴 새 주소의 집으로 오라고 알렸다. 돈을 벌어 멋지게 고쳐줘야지 하는 내 바램은 누구와 나눠보지도 못한 채 흩어졌다. 


과거에 이 집은 크기로만 봐도 상류 가옥은 되지 못했다. 서민을 위한 주택으로 지어졌을 테다. 한 동은 아니었고 문간채 등 부속채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얼렁뚱땅 공부해 왔던 나로선 정확하게 알 수 없는 대신 잘 정리된 책을 참고해 보태자면 따뜻한 남부 지역의 주택들은 마당에 여러 채를 나누어 짓고 외부 공간을 적극 활용한 사례가 많다고 했기 때문이다. 

책에 나온 호남형 사례는 실제 영광에서 내가 살았던 집의 구조와 비슷해서 신기했다. 

전통 한옥의 형태는 시기별, 지역별로 다양성을 가지는 데, 지역형은 기본적으로 기후와 지형 등 자연적 조건, 산업과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지역 전통을 반영한다. 즉, 온돌-마루-부엌의 배열 방식, 건물과 외부 공간의 배치 방식 등이 달라지는 데, ‘호남형’은 마루가 한쪽 끝에 있고 부엌의 좌우로 온돌이 놓인 소위 중앙 부엌형의 구성을 띄었다. 



대충 그린 우리집 평면(다시 그리기..)
좌 조선 후기에 등장하는 사례를 기준으로 지역형 분류.121p/ 우. 전라남도의 사례 120p, <한옥과 한국 주택의 역사, 전봉희.권용찬 지음>




여담으로 충청도 공주 한옥 리모델링을 할 당시에도 맡은 한옥이 이 책의 중부형 사례와 거의 일치해서 오-오-했었더랬다. 


우리도 이사하면서 한옥을 직접 수선했다. 

지붕처마 끝에 빗물받이를 설치하고 툇마루엔 새시를 달아 마루를 내부 공간으로 바꿨으며, 밖에 있는 화장실은 없애고 벽돌을 쌓아 집의 좌측에 실내로 연결되는 화장실과 보일러실을 덧붙였다. 기름으로 방을 데우는 바닥난방으로 바꿨고 부뚜막은 없앴다. 방엔 사각무늬 장판을 깔고 잔꽃무늬 벽지를 바른 다음, 생김새가 제각각인 가구를 들여놨다. 미적인 것은 두고 실용적 가치를 따라 현대생활에 맞춘 개량 한옥이었다. 


적어도 세 가정의 터전이었던 이 가옥은 필요에 따라 별개의 덩어리를 붙이고, 때마다 구하기 쉬운 재료들로 콜라주해온 흔한 가정집으로 얼핏 보면 특별하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러나 잔잔한 멋이 있었다. 

멋은 그곳에 내가 또는 가족, 손님 누군가 있을 때만 스미어 나오며 오직 사랑하는 이들 만이 알아차렸다.* 


멈춰 있지만 동적이고 무생물이지만 생명체 같았다.  그곳을 사랑하는 우리는 공간과 관계 맺으면서도 주변 관계에 따라 변화하고 반응하는 현상을 그저 감각적으로 인지할 뿐이었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 짐 자무쉬 영화, 오역된 한국식 제목을 가져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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