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왔다.
채 지지 못한 단풍 위로 눈이 쌓였다.
열이 좀 나는 것 같아 오늘 일은 하지 못했고 대신 눈과 살구를 이불 삼아 낮잠을 잤다.
우정씨가 사다 준 만두를 먹으며 -어제 뭐 먹었어?-를 봤다.
다시 낮잠을 잤다.
낮잠 사이에 살구 산책을 했다.
하얀 눈 사이로 보이는 컴컴한 저녁을 건너 살구와 한강을 나갔다.
한강공원은 고요하고 맑았다. 개와 사람, 사람과 아이 그리고 눈사람, 눈사람까지 합쳐도 채 열 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신이 났다.
눈에 찍힌 살구 발자국은 살구인데, 내 발자국은 내가 아니다.
밤 열한 시 배라도 채우고 싶은 마음에
밥솥을 열어 밥을 푸고 임실에서 담가 온 김치를 자르고 계란프라이를 해서 참기름과 싹싹 비벼
먹어본다.
살구가 있어 다행인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