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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글

솔직하지 않거나 솔직할 수도 있는 기록

2025.1.15

by 두부세모

1.15 밤

서재에 앉아 사부작거리는 내 옆엔, 안 자냐고 눈치 주는 개가 있다.

제발 혼자 가서 자면 안 되겠니? 눈짓을 보내보지만

응 언냐, 나 시무룩 - 하는 표정에 약해질 수밖에.

항상 귀여운 자가 이기는 법, 짐과 몸을 침실로 옮긴다.


1.15 오전 11시 ~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이 싫었다. 올바른 선택일 때보다 대체로 회피나 변명을 할 때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겁했던 이 말은 밝게 빛나는 응원봉과 뜨거운 의지를 가진 자들 앞에 쓰일 땐 용기 있고 멋있어진다.


엉엉 슬픈 마음을 다른 세계로 보내려고 요가매트를 깔고 앉았을 때

띠링, 컨디션 좀 괜찮나요? 체포기념 칼국수 점심?

진짜 새해의 시작이다.


선약으로 체포기념 칼국수는 내일로 미루고, 친구집에서 월남쌈을 먹었다.

이 월남쌈은 들림무에서 소개한 ㅎ 내 마켓컬리 장바구니에도 들어있던 아이템, 혼자 살아서 주문할 수 없었던 그 월남쌈이었다.

며칠 만에 누군가와 마주한 채로, 쌈을 싸 먹으며 오늘의 밥심을 얻는다.

생긴 에너지로 우리는(거의 나만) 주저리주저리

습한 나한테 보송보송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와

지난 일과 지나지 않은 일들, 올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들을 말했다.

아! 시작했다 그만둔 일에 대해 물었다.

너무 많죠.

… 저는 친구들에게 시작했다 그만둔 일들에 대해 인터뷰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친구가 많지 않네요.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욼었다. 허흥흑.

쌈이나 싸 먹자.. 다른 재료들을 한데 아울러 어울리는 쌈이란 참 아름답다.

심지어 식탁 위의 우리도 보듬는다. 너의 세계는 얼마나 넓은 것이냐.

쌈같이 살아야지.


2시 ~

작업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우정님과 쿰쿰한 발효 냄새나는 이야기를 짧게 나누었다.


6시 28분

띠링, 팟캐스트의 알림이 뜬다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 얘기 43. 시작하고 끝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얘기- 알람이 울린다.

캡처해 ’ 주제놀람..‘이라 써서 보낸다.


8시 ~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들을 빌리는 데 사서께서

어제도 오셨었죠? - 확신에 찬 얼굴과 목소리에

맞아요!

재밌게 읽으세요 - 웃으며 책을 돌려준다.

도서관을 나서 찬 공기를 만난 뒤에야, 나 어제 안 왔네.

5일 전에 왔었어요. 그 사람 누구예요?

그나저나 찬 공기 개운하다.

집 가는 길, 실한 붕어빵 4개에 삼천 원 사서 뜨거울 때 하나를 얼른 꺼내 먹는다.

집에서 기다릴 살구 생각에 걸음을 재촉하면서, 아무래도 꼬리부터 먹는 건 붕어빵의 형태성을 반하는 일이라며 두 번째 붕어입을 내 입으로 쑥 넣는다.


1.14-1.11

자기 연민에 빠지려고 할 땐 얼른 욕조에 물을 받고 목욕을 한다.

뜨거운 물에 들어간 몸이 벌게지고 땀이 송송 맺힌다.

땀도 짜고 눈물도 짜다.

신파엔 신파에 어울리는 노래가 빠질 수 없어, 장기하의 별거 아니라고를 반복.

그래도 잡념이 올라오면 나간다. 걷는다. 춥다.

집으로 들어온다. 배고파지니까 밥을 잘 차려 먹는다.

눈물이 찍 흐른다. 그럼 침대에 발랑 눕는다. 엉엉 소리 내 운다.

엉엉의 냄새를 맡고 살구가 온다.


기대고 싶은 마음과 기댈 수 없는 마음 사이에

자라난 아픔을 안녕과 함께 다른 세계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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