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
1.
때론 너무 사라지고 싶다.
때론 너무 사라지고 싶다-는 감정에 사로잡히다가도, 나와 산책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또 주섬주섬 옷을 걸쳐 입고 문 밖으로 나선다.
사실 살구와 살기 오래 전부터도 마음의 정주가 불안해질 때면 밖으로 나가 정처없이 걸어왔다.
온갖 불안을 떨치는 방법은 나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것이었고,
보행은 나를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걸을 때야 비로소 시선과 에너지가 바깥으로 향했다가 -햇빛과 바람에 정화되고 온갖 냄새를 흡수하고 가로수와 낯선 사람들로부터 부딪히기도 하면서- 변화되어 돌아와 끊어진 시간을 다시 이어준다.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에서 -순례란 경계선 상태, 과거 정체성과 미래 정체성 사이의 경계선에 놓인 상태이며,
순례자는 그 문턱을 넘어간 사람이라고 했다. 이 문장을 보고서야, 나의 걷기는 혼자만의 순례를 행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거대하지 않고 일상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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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의원에서 침을 처음 맞았다.
쓰라린 경험들이 침같은 거 였으면.
당장 근육은 더 굳고, 뻐근하고, 아프지만,, 결국엔 건강해진다니!
3.
명치에 품어놓는 장면.
고개를 들어본 하늘에 달이 있다!
퇴근길에 노란달.
오목히 빈 자리에
한낮의 하얀달. 구름 낀 뿌연달.
상현달, 하현달,
그믐달,
초승달,
보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