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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Jul 03. 2024

판포리로 가는 길 - 1부 모밀집

 가게 문을 열고 젊은 남녀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홀을 담당하는 큰 딸이 상냥한 인사를 건네며 물병을 챙겨 들고 손님 앞으로 나갔다. 딸의 목소리는 참 상냥하다. 편한 곳에 앉으라며 자리를 안내하고 큰 활자로 적혀 벽에 걸린 메뉴판을 가리켰다. 손님은 곧 시원한 판 메밀과 들기름 갓메밀을 주문하면서 추가로 만두 한 판을 더 주문했다. 만두라는 말이 들리자 얼른 찜기의 버튼을 눌러 물을 끓어오르게 했다. 키오스크에 주문을 넣은 딸이 "여행 왔나 봐"라고 말했다.

  대형 솥단지에 면을 뽑고 삶아내야 했으므로 우선 가스불을 세게 올려붙였다. 물이 아무거나 삼킬 듯이 끓기 시작하자  반죽기에 있는 메밀 반죽을 여유 있게 끊어내어 솥단지 위에 있는 면 틀에 넣었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는 물속으로 실타래 같은 면이 잠기기 시작했다. 모터 정지되는 소리가 "쿵" 하고 들리자 면을 자르고 타이머를 눌렀다.

  "나도 이제 전문가며 경력자야"라고 하지만 모터가 정지되는 소리와 내 가슴이 내려앉는 소리는 구분을 할 수가 없다. 기계는 언제나 무섭고 기계 앞에서는 언제나 주눅이 든다.

  면이 거의 익어갈 무렵이 되자 타이머 시간을 확인하고 건져낼 준비를 하느라 뜰채를 손에 들고 있었다. 밖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고개를 들어 홀을 내다봤다. 네 명의 남자 손님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딸이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들어와서 내가 당황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엄마는 할 수 있어."라며 딴에는 용기를 주고 나갔다.

  다시 반죽을 넣고 물이 펄펄 끓고 있는 대형 솥에 모터를 작동시켜 면을 뽑아냈다. 면은 용광로 같은 뜨거운 물속으로 스르르 빠져 들어갔다. 타이머를 작동시켜 놓고 주문한 메밀국수를 준비하고 있는데 밖에서 딸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눈가를 덮고 귀밑으로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님은 계속 들어오고  있고 만들어 놓은 반죽도 동이 나고 있었다. 반죽기에 메밀가루를 넣어야 되는데 손님은 밀려오고 마음은 조급해지고 딸은 동당거리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엄마는 할 수 있다는 격려 따위 이제 하지도 않는다. 반죽이 늦어져서 기다리는 손님이 짜증을 내 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따라 사장인 아들은 손님 없는 시간을 틈타 잠시 볼일 보고 온다고 밖에 나가있는 중이다. 주방 안은 쑥대밭이 되어가고 생각은 저 멀리 가 있는데 주방 뒷문으로 아들이 들어와서 앞치마를 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구원병이 나타났다. 사장인 아들은 주문서를 확인하면서 화구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나는 부족한 반죽을 하기 위해 메밀가루를 부어 반죽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넓지 않은 주방 안에 기계음이 들렸다.

  아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면서 메뉴에 따라 순서대로 그릇이 놓였고 건져낸 면을 냉각기에서 주물러 전분을 

씻어내고 물기를 털어내어 탄력 있게 만들었다. 나는 자연스레 보조가 되어 책임을 덜 느끼는 자리로 빠져나왔다. 좁은 주방에서도 한발 거리가 주는 책임과 부담이 다르다는 걸 느껴지는 순간이다. 시간을 따져보면 점심시간이 길지는 않음에도 어찌 된 일인지 우리의 위장은 밥 달라고 하는 시간이 얼추 비슷해서 먹어야 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각각 다르다.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마지막 손님이 결재를 마치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이자 직원이자 가족인 우리 셋은 테이블 하나씩 차지하고 "아이고"소리를 내며 의자에 걸 터 앉았다. 그래도 사장이라고 움직여 토마토를 갈아 주스 한 컵씩 만들어 와서 권했다. 달달한 토마토주스가 목구멍으로 미끄러지듯이 흘러 넘기며 당이 보충되고 있다고 서로 웃었다.

  사장이 본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주방 뒷문을 통해 뒤꼍으로 나왔다. 주방의 열기를 벗어나 시원한 바람이 상기된 얼굴을 식혔다. 수돗가의 긴 호수를 들고 물줄기를 열어 얼마 전 심은 잔디에 물을 뿜었다. 잔디가 아니라 내가 샤워하듯이 시원했다. 

  홀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물을 잠그고 안으로 들어가니 늦은 점심을 준비 중이다.

  "손님들 배부르게 하느라 우리는 배곯아 죽겠네요. 요기하고 브레이크 타임이니 쉬도록 해요."

  아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간단한 점심상을 차려냈다. 현관에 브레이크 타임 표시를 하기 위해 영업 중이라고 표시된 불을 껐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와서 세 사람은 시장기를 느꼈다. 앞에 놓여있는 밥그릇을 금방 비워내고는 쉬는 시간을 갖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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