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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에세이 22화

어디서나 이방인

by 옥희

나는 말을 잘 못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말하기' 였다고 대답한다. 80년대 초 제주에는 마땅히 취업할 만한 병원이 없었다. 내가 들어갈 자리를 놓고 막연하게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어서 나는 제주에서 일하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부모님 도움으로 학교를 졸업했으 밥벌이를 해서 떳떳하고 싶었다. 제주에서 간호대학을 졸업한 나는 육지 소도시에 있는 병원에 취직했다. 제주를 떠나 살아 본 적이 없었기에 숙식을 제공하는 기숙사가 있다는 조건이 좋아서 옥천에 있는 가톨릭 성모병원에 입사했다. 집에서는 졸업하자마자 고민 없이 취직했다고 대견하고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가방 꾸려 먼 길 떠나는 딸에게 서운한 마음과 뿌듯한 마음이 같이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제주를 떠나 부산에서 새마을호 기차를 타고 대전에서 옥천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외지로 혼자 다녀본 적이 없는 나는 주머니에 교통편을 이용하는 방법이 적힌 교수님의 메모지가 만지작거리면서 닳고 닳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면에는 외래 진료를 받기위해 접수하는 원무과가 보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병원 건물과 뒤편 산 위에 위치해 있는 작은 성당이 저물어가는 해에 고즈넉이 보였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산 모퉁이에 성모 마리아 상이 서서 병원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성당에서 내려오는 길은 병원과 기숙사로 연결되어 미사가 끝난 후 사람들이 저 길로 내려오겠구나 생각하게 했다. 얼핏 보아도 평지가 아닌 산을 깎아지었을 것 같은 병원 건물을 제외하면 주위에는 아직은 벗은 나무들이 많았다. 성당 주변으로 고개 들어 바라보면 키가 큰 나무의 꼭대기에 군데군데 새집이 지어져 있었다. 제주의 일상에서는 잘 보지 못하던 그림 같은 정경이었다.

병원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서울 여행은 다녔어도 일상적인 일들로 사람들과 얘기를 해본적이 없어서 표준말이 자연스럽게 따라가지 못했다. 남들은 숨을 쉬듯이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이 나는 혀가 꼬이든지 끝을 얼버무리든지 분명치 않았다. 나의 입은 표준말인 듯 아닌 듯 '이게 아닌데'라고 내심 자신 있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말을 하거나 안 하거나 '고향이 어디냐?'라고 물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대답하기도 난감했다. '제주도'라고 대답 하면 누워있던 환자들도 벌떡 일어나 놀라워 쳐다보며 질문이 쏟아졌다.

병원 생활은 익숙해졌는데 내가 하는 말은 항상 끝을 흐려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재미있게 수다를 떨면서 얘기하다가도 고향 얘기가 나오면 나의 입은 조가비처럼 닫혔다. 그럼에도 일을 해야 했고 환자들과 소통을 해야 하니 말을 전혀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넉살도 생겼고 가끔은 뻔뻔한 유머를 구사하기도 했다.

충청도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자주 이사를 다니게 되었다. 남편이나 나나 남들은 예측이 안되는 전국구 억양으로 변해갔다.본시 배짱이 없어 항상 주눅 들어 지내다 보니 가끔은 내 성격이 어떤 유형인지 알다가도 모를 때가 종종 있다. 말하자면 내 본적은 어디인지, 내 원래 성격은 어떠했는지 알 수가 없게된 것이다. 아마도 살아내기위해 맞춰졌을거라 여겨진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한 것이다. 고향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을 품었었다. 아버지는 안 계시니 어머니와 고향에 있는 형제며 친구들이 나를 반겨 주리라 생각했다. 혼자 꾸는 꿈인 줄 알았다면 진즉에 설레는 기대를 접었을 것이다. 시간과 세월은 나에게만 스쳐간 것이 아니었다. 세월은 형제와 친구들에게도 동등했다. 늙어버린 동생들은 다른 환경에서 지낸 나의 시간들을 냉소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었다. 친구들은 지나온 세월의 공백을 채울 공감을 필요로 했다.

주변에서는 육지에서 이사 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굳이 사투리를 쓰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도 현지인들은 제주도라고 하면서 사투리를 쓰지 않는 나를 고향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더러 더러 제주도 사투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나는 중간에서 애매한 입장이 되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여태 살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시간이 주는 약은 특효약일 때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안다. 나는 여기에 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으로, 때가 되면 나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기다릴 수 있다. 언젠가 이방인이 아닌 현지인이라 불릴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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