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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에세이 27화

장 맛으로

by 옥희


장 가르기를 했다. 메주를 띠운 지 60일이 되었으며 햇살은 따뜻하게 비춰 장을 만들기에 좋은 날씨다. 작년에 장독대를 만들면서 된장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던 일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장독대의 항아리를 살펴보고 있는 내 모습이 흡사 된장을 만드는 장인 할머니의 모습 같다고 애들이 한마디씩 했다. 올해 원하는 맛을 지닌 된장이 만들어지게 된다면 된장 사업을 해야겠다고 애들과 웃으며 말했다. 노년에 고생을 사서 해야 할 것 같아 사업가로서의 꿈은 접기로 했다. 소리 없이.



어릴 적에 장독대에서 친정어머니가 항아리를 자주 열어보셨던 모습이 스쳐갔다. 어머니는 된장 맛을 보시고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셨다. 된장 맛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어머니는 장독대의 항아리를 닦고 또 닦고 하면서 윤이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다.


우리 어머니 때의 항아리는 일 년 치 식량을 책임졌다. 장맛을 잃어버리면 사는 게 고역스러웠던 며느리들의 숨길 수 없는 짐이기도 했었다. 잘 익은 된장으로는 된장찌개를 비롯하여 국에 무침에 잡내 제거에 필수불가결했다. 집안일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한 끼 밥을 먹을 때는 그 집의 된장마을 평가하는 시절도 있었다.



마트에 진열된 된장의 종류만도 셀 수 없이 많아서 된장 코너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도 있다. 비슷하게 만들어졌어도 어머니의 손맛을 만들어내기란 가당치 않다는 걸 알고는 있으나 언젠가부터 마트의 된장 맛은 우리의 혀를 익숙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된장 품평회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마트의 된장 맛에 한 표가 더 가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된장을 만드는 이유는 내 어릴 적 추억이 그립기 때문이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손끝에 닿는 촉감으로 지나간 시절을 가져오고 싶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번에 만들어진 된장이 눈에 비치는 색감과 코끝으로 흘러드는 구수한 맛으로 지난 시간을 생각하게 한다면 나도 어머니의 장맛을 전수받은 딸로 자부심을 갖겠노라 생각했다. 부드럽게 주물러 된장 단지에 꾹꾹 눌러 담고 소금을 뿌려놓고 유리 뚜껑을 닫으면서 된장을 만들겠노라 작년에 다짐했던 마음을 실행하게 되어 흐뭇했다.

'된장아, 맛있어져라. 된장아, 맛있어져라.' 주문을 걸었다.

우스워하며 쳐다보고 있는 친정어머니가 옆에 서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가슴이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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