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회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갑자기 생각났다. 일하다가 잠깐 쉰다면서 채널을 돌리던 중 보게 된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영화 제목도 배우의 이름도 모르겠으나 오래전에 본 외국 영화였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인 주인공은 일행들과 몰려다니며 약한 친구들을 괴롭히며 학창 시절을 보냈었던 것 같았다. 말하자면 학폭의 주범인 셈이었다. 거기에 대해 주인공은 아무런 의식도 없었고 그저 재미 삼아하는 놀이 정도로 여겼지만 늘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는 수치와 모멸로 학교생활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안하무인이었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인해 주변에 속아 재산을 잃고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는 등의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겪으면서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그제야 주인공은 학창 시절에 장난처럼 괴롭히던 한 친구가 생각이 났다. 주인공은 지난날 자기가 저질렀던 못된 행동으로 인해 그 친구가 겪었을 고초를 생각하니 가슴이 몹시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밤늦은 시간, 주인공은 전화번호를 찾아 그 친구에게 신호를 보냈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적잖이 놀랐다. 둘이는 안부를 물을 사이도 아니었으므로 수화기 너머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잠깐의 침묵은 서로 다른 감정으로 인해 각자 어색했다. 주인공은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었다.
“미안하다. 내가 그때 너를 심하게 괴롭혔다. 할 수 있다면 용서해 줘”
주인공은 진심으로 사과했고 용서를 구했다. 대화랄 것도 없이 전화는 끊겨서 ‘뚜뚜’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공은 상대방의 반응을 듣지는 못했으나 십 대 때 호기로 저지른 자신의 과오를 이십 대가 되어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벽 쪽으로 걸어가서 걸려있는 보드에 적혀있는 명단 중 주인공의 이름을 까만색의 매직으로 지우는 것이었다. 흡사 저승사자가 다음에 데려갈 명단을 지우는 모습처럼 보였다.
나는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다. 괴롭힘을 당했던 친구는 그 일행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복수하는 중이었는데 내일이 주인공 차례였다. 주인공의 진심 어린 한 마디의 사과가 화를 피하도록 해 주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말로 행동으로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가 있는데 더러는 부러, 더러는 모르고 할 때가 있다. 자존심이 상한 상대방은 마음에 담아두어 쓴 뿌리로 자랄 때가 있다.
전에는 내가 모르고 한 일에는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생각이 달라졌다. 모르고 한 일에도 나의 행동이나 잘못된 말의 표현 등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했거나 자존심을 건드려 아프게 했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잘못한 것이다. 모르면서 지나치게 됐다면 불행한 일이요, 어느 순간 생각나서 사과할 기회가 있다면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었다. 그런저런 것들을 다 신경 쓰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하겠지만, 쉽지 않은 세상에 주변 사람들과 지내려면 품격 있게 말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원래 그래’라든가 ‘내 성격이 그런 걸 어떻게 하냐’라고 하면서 상대방이 상처를 받든 말든 솔직한 성격이라는 말로 뱉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피하고 싶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 앞에서 다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악의는 없다고 하지만 때로 폭력적인 말은 가슴에 남아 회복 불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되 알고 저지른 죄를 회개합니다. 상대에게 용서를 구할 용기를 주시고, 모르고 저지른 죄를 용서하시되 상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도록 생각나게 하소서,”
오늘 내 생명을 연장하여 하루를 더 살게 하는 하나님의 목적, 나로 인해 아팠던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여 얼어붙은 심장에 온기가 흐르도록 해 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