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조심할 것
익숙한 곳도 주변이 달라지면 두려운 곳이 된다는 걸 새삼 겪은 날이었다.
제주에는 오름이 많다. 우리는 한림과 가까이 살고 있어서 금오름을 자주 찾는다. 주로 걷기 위해서다. 정상까지 경사가 있는 길이어서, 여름에는 흐르는 땀이 만만치 않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가벼운 재킷에서부터 패딩 종류까지 다양한 패션을 볼 수 있다.
오름에 올라가서 경관까지 볼 요량이면 단연 금오름이다. 입구에서 금오름 정상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다. 경사로 가 땀을 흘리게 하여 살짝 멀게 느껴질 뿐이다. 우리는 운동 목적이라 바람직한 코스로 여긴다.
정상에서 사방을 바라보면, 넓게 펼쳐진 바다에 떠있는 섬들이 팔을 뻗으면 손으로 집을 수 있을 것 같다. 한라산을 향해 무수히 솟아오른 디딤돌 같은 오름은, 한 발에 닿을 것 같이 바라보는 것으로 땀 흘린 보상을 받는다. 딸과 나는 이곳을 찾아 눈 호강을 하며 심신을 단련시킨다.
다른 일정을 마치고 가느라 출발할 때는 이미 오후 다섯 시를 넘기도 있었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익숙한 곳이라 생각하고,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차는 금오름을 향해 달렸다.
오름 정상으로 가는 좁은 길이어서 하산 중인 사람들로 붐볐다.
우리는 마주 오는 사람들을 피하며 느린 걸음으로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하여 막 한숨을 쉬는 찰나의 순간에 노을의 마지막 빛을 어둠이 삼키고 있었다. 어둠이 깔린 산에서 내려다보는 아래 곳곳에서 불빛이 반짝거렸다. 우리는 정상 둘레를 한 바퀴 돌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미세먼지가 많은가 싶게 별도 없고 달도 없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는 어둑하다 못해 깜깜해 보였다. 산에는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우리뿐인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내려오는 길에 딸이 주머니를 뒤적이며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핸드폰!"
노을을 찍는다고 앉았던 평상에 휴대폰을 두고 온 것을 뒤늦게 기억해 낸 것이었다. 나는 내려온 길을 딸과 함께 다시 올라가야 했으나 나는 화장실이 화장실이 급했다. 각자, 나는 아래로, 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볼일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보니 주변의 매점도 문을 닫았다. 어두운 숲 속에 우리 모녀가 갇혔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망설일 것도 없이 주차해 둔 차를 끌고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해진 길을 따라 올라갔다. 평소에는 차량 통행금지 구역이지만 그걸 따지기에는 딸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자동차의 하이빔은 좁은 길을 비췄다. 하늘 맞닿은 곳의 경계를 알 수 없이 깜깜했다. 나는 차의 라이트를 그대로 비추었다. 혹시나 딸이 이 불빛을 보고 있다면 안심하라고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저 멀리서 별빛같이 반짝이는 불이 움직이며 내려오고 있었다. 딸이 들고 있는 핸드폰의 불빛과 내가 쏘는 자동차의 불빛이 서로 만났다.
별이 없는 어두운 하늘에 강력한 두 별이 빛나고 있었다.
모험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만도 금물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간이 콩알만 하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