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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Nov 19. 2023

건망증 고치기

 나는 장수할 것이다. 

 친정에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두 분은 백세 가까이 살다 가셨다. 백세가 가까우니 노환으로 세상을 뜨셨다. 두 분을 생각할 때마다 친정어머니도 오래 사실 것이고 나 역시 백세는 거뜬히 넘길 것이다. 특별한 사고를 겪지 않는다면 이란 전제하에서다. 가끔 남편과 우리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눌 때 가 있다. 남편은 내가 오래 살아서 당신은 걱정 없다고 한다. 뒤처리를 부탁한다고 우스갯소리도 같이 한다. 아마도 가끔 극성스러운 모습이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나는 건망증이 심한 편이다. 조기 치매를 주제로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나도 '혹시'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칼을 냉장고 야채 통어 넣어 두고 못 찾아 헤매고, 휴대폰을 차 트렁크에 놓고 사나흘 연락 두절이 되기도 한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으면서 안경을 찾고 있으면 상대방이 일러주는 건 애교로 봐줄 수 있다. 가끔 잃어버린 내 소지품을 찾느라 여기저기 들쑤시고 급하게 뛰어와서는 왜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심각하기도 한다. 주변에서는 그 정도면 치매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꼿꼿하다. 태어나서 이 정도 사는 동안 아무런 이상 없는 것은 비 양심적이라고 하면서. 

 

 양쪽 할머니가 치매 없이 백세 가까이 사셨기로 난 치매 유전자는 없다고 큰소리치지만 사람 없는 곳에서는 살짝 한숨이 나온다. 의학이 발달하여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백세 인생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준비하며 맞이해야 하는가의 결론도 결국 본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인 셈이 된다. 그래서 생각해 냈다.


 평소에 메모를 잘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긴가민가하고 쓸데없이 똑같은 일을 하며 시간 낭비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하기로 했다. 가까운 곳에 작은 수첩과 펜을 비치하여 간단한 단어 만이라도 적는 것이다.

 '가장 흐릿한 잉크가 가장 또렷한 기억보다 낫다'라는 명언을 생각했다.' 머리도 좋지 않은 내게 알맞은 글귀였다.

며칠 전 조그만 수첩에 아주 작은 내용이지만 적어놓은 메모를 딸이 보고 감탄했다. 그림과 함께 적어 놓으니 알기도 쉽고 귀엽다고 했다.

 남편은 웃으면서 한마디 더 거들었다. 

 "벽에 똥칠하는 거는 안 봐도 되겠네"

 빵 터지는 딸을 보며 웃을 일인지 울어야 되는 일인지 아리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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