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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Nov 20. 2023

나이 듦의 면류관

 어제 미용실에 머리 염색하기로 예약을 해두었다. 

 바로 집 앞이라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찾아갔다. 

 전에는 어쩌다 새치 한두 개가 발견되면 화들짝 놀라면서 뽑아대곤 했었다. 제는 염색약이 떨어지면 당황스럽다. 그나마 어느 정도 부분일 때는 혼자서 염색이 가능했다. 이제는 머리 전체가 하얘져서 미용실을 찾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염색이 덜 되어 군데군데 희끗하게 보일 땐 브리지라고 하며 웃어넘겼다. 이제 그런 농담도 통하지 않는다.

 미용실에 가면 은연중에 사생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시간이 여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이가 드니 게을러서 관리 안 한 것 같은 모습으로 비치는 것 같다는 하소연이 흘러나왔다. 미용실 원장은 당연히 관리한 티를 내야 한다고 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세월 지날 때 귀띔이라도 해주지.’ 지나는 시간이 야속했다. 흰머리와 눈가의 주름은 나이가 주는 보상이며 면류관이라고 여겼다. 

 요즘에 여자들의 얼굴을 보면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다. 오십 정도 보인다 싶으면 70이라 한다. 멋 내기 염색과 세련된 의상도 젊어 보임에 한몫을 한다. 가벼운 성형은 놀라지도 않는다. 때로 긴가민가 하는 얼굴로 나타나는 이웃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이상해 보일 때가 있다. 남자들의 눈썹 문신은 생소한 일이 아니다.

 "얼굴에 손댔구나!" 하고 반응을 보이면 예전처럼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응" 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어릴 때는 자연스럽게 늙어가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자연스러운 흰머리, 눈가의 주름, 할머니 얼굴과 팔뚝에서 보았던 검버섯 등이 자연스러움이라 여겼다.

 언제부터인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의 잔주름과 날로 희어져 가는 흰머리는 가벼운 한숨으로 변했다. 여름에 민소매를 거부하게 되는 상박의 늘어진 근육과 팔뚝에 생겨가는 검버섯은 시스루로 가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아름답다고 외치던 자신감은 어디로 숨었는가.

 정작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인공적 노력이 이해는 된다. 한숨 대신 자신감을 찾아 생활할 수 있다면 더 좋을 수도 있겠다 고 생각이 바뀌어간다.  남성들도 송승헌 같은 눈썹을 선망하여 짙은 눈썹으로 바뀌어 간다. 온 국민이 연예인이 되어간다.

 

 요양원에 누워계신 어른들을 보면 몇몇 분은 젊은 날 멋쟁이였다는 걸 알 수가 있다. 노환으로 육신의 모든 기능이 상실되고 더러는 치매까지 와도 문신으로 멋을 낸 눈썹과 아이라인은 또렷하다. 선명한 입술 라인과 얇아진 입술의 붉은색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아마도 그때는 이렇게 누워계시게 될 줄을 생각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어색하며 슬프다.

 나 역시도 자고 일어나면 눈썹이 반쪽이다. 주위에서 문신하면 얼마나 좋은지 알려주기도 한다. 얼굴에 있는 점도 빼라고 한다. 나는"내 얼굴에 점이 어디 있다고?" 하며 딴청을 부린다. 상대방은 도대체 저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느냐고 비웃기도 한다.

 청춘은 아름답다고 했으나 너무나도 빨리 지났다. 지나간 추억이 아름답기만 했겠는가 마는 아프고 슬픈 기억도 아름답다. 돌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를 쓰고 발악하면서라도 자연스러움을 고수하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펜슬을 사용하여 기어코 눈썹을 그려낼 것이다. 짝짝이가 되더라도.

 

 졸음이 쏟아져서 잠깐 꿈을 꾼듯한데 부드럽게 감겨주며 마사지해 주니 개운했다.

 마무리한 후에 거울을 보니 짙은 색의 머리 색깔을 한 한결 젊은 여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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