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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Nov 13. 2023

나 홀로 집에

 며칠째 집에 혼자 있다.

 나이 들면 어떻게 지내는가 좋을까 생각하다 남편과도 조금 떨어져 지내면서 오로지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환갑이 지나도록 껌딱지처럼 붙어살다 친정인 제주에 내려와 거처를 마련했다. 

 이제부터 내 노후를 그림같이 만들어야지 다짐하면서.

 처음 얼마간은 주변의 경관을 바라보며 탄성 했다. 아름다운 어릴 때는 그렇게 뛰쳐나가고 싶어 했는지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다를 끼고 다니면서 전에는 가보지 못했던 곳을 혼자 찾아다니는 여유는 살다 보니 이렇게 행복할 수도 있구나 여겨졌다.

 뒤늦게 마련한 내 공간에서 앞으로 될 모습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 짓는 얼굴이 되었다.

 화보 사진처럼 챙이 넓은 예쁜 모자를 쓰고 프릴이 많이 달린 긴치마를 입고 화려한 꽃이 많이 피어있는 정원에서 가지를 다듬고 화분을 정리하고 있는 내 모습은 얼마나 환상적일까.

 겨울을 보내고 날씨가 풀리면서  주변은 초록빛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집 마당에도 봄이 오기 시작했다. 풀과 함께.

 풀은 눈뜨면 자라고 뒤돌아서면 자라고 비가 오면 더 빨리 자랐다. 

 풀이 너무 많이 자라면 뽑기도 힘들고 마당 군데군데  파인 흙이 이발 충처럼 보일 때가 있어 어릴 때 뽑아주어야 한다. 빛의 속도처럼 자라는 풀은 내가 들고 있는 호미가 따라가지 못하고 늘 헉헉 거린다.

 럭셔리하게 차려입겠다고 생각한 내 화보 코디도 불가피하게 바꿔야 했다.

 잡초 뽑고 잡목들도 정리하고 리어카도 끌어야 하는 노동을 감내하기에는 화보코디가 걸치적거렸다. 

 나의 홈웨어는 무릎까지 오는 긴 장화와 몸뻬 바지, 밭일하는 어른들이 얼굴을 가릴 수 있도록 쓰고 있는

꽃무늬 모자로 바뀌었다.

 아들이  내려와 같이 지내다 청주에 일이 있어 다니러 갔는데 잠시 혼자가 되어보니 덩그러니 집이 커 보인다.

생각해 보니 평생 혼자가 된 적은 없었다. 남편의 직장 형편으로 인해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우리 기족은 늘 함께였다. 아직은 서로에게 껌딱지인 셈이다.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는 못하지만 아쉬운 대로 자유롭다.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침이 되면 남편은 늘 염려함으로 먼저 전화를 한다.

 내가 부족함 없고 분위기 있게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나름 열심히 주변을 정리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덕분에 저녁에 오는 남편의 전화는 받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밀려드는 피곤함으로 단잠에 빠지기 때문이다.

 조만간 가족이 찾아오면 나의 홈웨어는 긴 장화와 몸뻬 바지를 입고 새카맣게 그을리고 군데군데 검버섯이 깔린 얼굴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내 모습을 보고 생각할 것이다.

 참 분위기 있게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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