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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희 Dec 07. 2023

건망증


 두 집 살림이 보통 일은 아니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다가 모처럼 가족들이 있는 집에 왔다. 아마도 3~4개월 만에 왔을 것이다.

 모처럼 왔으니 여기서도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은 늘 있게 마련이다. 짐에 있는 식구들은 나를 위해 최대한 치우고 정리했다고 하지만 주부의 눈은 항상 매의 눈인 것이다.


 냉장고에 먹지 않고 쟁여둔 오래된 음식이며, 누구로부터 받은 인정 어린 식자재들이 방치되어 있는 것들 정리는 내 손을 거쳐야 한다. 도착한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치우고, 버리고, 채워 넣고, 식사 준비 등을 하느라 저녁이 되면 피곤하기도 하다.


 전에 즐겨 다녔던 산책로를 한 바퀴 걷겠다고 저녁 상을 치우고 저녁 늦은 시간에 혼자 집을 나왔다.

 시골에만 있다가 도심 공원으로 나오니 대낮 같은 조명에 걷기가 좋았다. 겨울이라 하지만 춥지도 않고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어떤 부분부분은 '공사 중', '진입금지'라는 푯말을 부쳐놓았다. 진입 금지 부분은 피해서 걷고 사람이 많지 않은 한산한 부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습관대로 늘 가던 코스를 갔다가 돌아오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도 길 따라 계속 걸었다.

 그런데 생소한 간판들이 보이고 방향이 집 근처가 아니라는 생각이 미치자 당황스러웠다. 밤은 늦어가고 휴대폰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를 더욱 당혹스럽게 한 것은 있어야 할 화장실이 안 보이는 것이다.

 "침착해야 돼" 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 아파트 단지가 몇 개 보이는데, 우리 집을 많이 지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돌아갈 생각을 하니 난감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집을 향해 되돌아갈 뿐이었다. 볼일은 급하지만 노상에서 해결할 수도 없다는 일념으로 가까스로 집을 찾아갔다.


 현관문을 들어서니 식구들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아우성이고, 경찰에 실종신고할 참이었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에는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현관 비번이 생각나지 않아 밖에서 못 들어 온 적이 있었다. 가끔 외출할 때 휴대폰을 안 갖고 나가면 식구들이 잔소리할 때가 있다. 순간적으로 "내가 지금 무슨 상황이지?" 하는 당혹감이 들기도 한다. 

 단순 건망증인지, 치매 초기 증상인지 살짝 염려되기는 하지만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거실 소파에 앉아 경찰서가 아닌 집에 무사히 왔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리 집이 이렇게 편안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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