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준비하다
나는 결혼하고 애 셋을 낳아 키웠다. 왜 셋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 보다 셋이 더 나은 것 같아서였다. 호화 호식하며 키우지는 못했지만 사는 동안 애들로 인해 울고 웃고 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했다. 그동안 행복한 시간으로 우리 부부는 애들에게 이미 효도를 다 받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애들도 각자 좋은 짝을 만나 우리 부부처럼 소소한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는데 바람처럼 잘 만나지를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애들을 데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찾아와서 복작거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은 걸 보면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가 보았다. 늘 그림으로 그렸던 마당 있는 집을 준비하여 어쩌다 애들이 오면 재미있게 쉬다가 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데도 애들은 혼자 마당에 들어섰다. 나이 들어 큰 집을 짓는 건 삼대 미련한 여자 중 한 명에 속한다 했는데 내가 그렇다. 마당이 있어 뒤돌아 서면 자라는 풀을 뽑아야 하고 쉬는 날 집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언제나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무심하면 게으른 티가 여기저기 드러나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 그러나 가끔 이른 아침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모닝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수고하고 애쓴 시간들이 아무렇지 않다.
나는 요즘 우리 애들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있다. 뒤꼍에 야외 피자화덕 만들기에 도전했다. 전문가는 아니나 시멘트를 개어 치대 바르고 벽돌을 준비하면서 하나하나 쌓아 가다 보니 곧 전문가가 될 폼이 되었다. 진행되어 가는 현장 사진을 떨어져 살고 있는 식구들에게 보여주니 기겁했다.
남편이 내려왔을 때 40킬로 레미타르를 옮기는 걸 보고 야단하면서 허리 부러진다고 20킬로 사다 쓰라고 했다. 사실은 40킬로 모르타르가 가격이 약간 저렴했지만 남편이 워낙 걱정하기도 하고 나도 은근히 내 허리가 염려되어 25킬로를 사다가 준비해 놓았다
화덕이 놓일 자리를 잡고 바닥을 편평하게 만들었다. 돌과 자갈을 걷어내서 시멘트가 잘 붙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땅이 워낙에 돌이 많은 탓에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전문가용 도구가 없어서 집에 있는 작은 고무 다라를 사용했다. 시멘트를 쏟아 붓기에 힘에 부쳐 소량씩 물에 개어 사용할 참이었다.
아무리 편평하게 자리를 잡아주어도 기울어지는 부분이 생겨 나중에 어떻게 될지 살짝 염려가 되었다. 기왕 시작한 일 마지막을 보려면 완성을 하는 수 밖에는 없는 일이었다.
매뉴얼을 꼼꼼하게 읽는 습관이 없는 탓에 눈대중을 자로 생각할 때가 많다. 브로크를 한 개씩 올려놓을 때마다 내 두려움도 올라가도 있었다.
무슨 일을 시작하면 중도포기를 쉽게 하는 습관이 있어서 이 작업을 통해 나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나는 과연 언제나 시작만 하고 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 졌다.
시끌벅적하며 마당으로 들어서는 애들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어쩌다 다녀가는 내 집 마당에서 화덕에 빵도 굽고 피자도 만들면서 웃고 떠들며 즐기는 모습을 생각하니 중단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