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책을 즐겨 합니다. 내게 있어 산책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기도 하며 잡념을 떨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기도 하지요. 자주 가는 오름이 있어요. 가까운 '저지 오름'을 찾아갑니다. 이곳은 경사도 있고 편평한 길도 있어서 한여름에 흘리는 땀은 운동효과도 낼 수 있어 일거양득입니다. 숲속의 포장되지 않은 산책로를 걸으면 발바닥이 지면을 닿을 때 쿠션이 느껴집니다. 나는 다칠까 염려하여 부득불 등산화를 고집합니다.
그늘진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오늘은 다행스럽게도 날이 많이 풀려서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젊은 남자였는데 맨발로 걷고 있었어요. 나는 스치는 것처럼 하면서 발을 내려다보았는데 젊은 남자의 발이 하얗고 길게 보이는 발이었어요.
숲에는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잎들이 많이 깔려있었는데 나는 젊은이의 발이 다칠까 봐서 조금 염려되었습니다. 저렇게 여려 보이는 발이 아픔을 이기고 익숙해지려면 군살이 많이 박혀야 할 것입니다. 등산화를 신고 씩씩하게 걷고 있는 나이 든 여성과는 비교할 수가 없지요. 건강을 위해 발바닥의 아픔을 참고 있는 젊은이가 대견했습니다.
걸으면서 나는 가끔 혼자 말하기도 합니다. 전날 누군가에게 억울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거나 섭섭한 마음을 말로 다 풀지 못하고 왔을 때는 걸으면서 얘기합니다. 그럴 때는 좀 전에 스쳤던 남자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처럼 혼자 얘기하는 나를 쳐다보기도 합니다. 상관없어요. 알지도 못할뿐더러 다음에 다시 보게 될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혼자 얘기하고 나면 마음에 두었던 생각이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겨져 문제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집니다.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한발 뒤로 물러서서 여유와 침착함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가끔 친하다고 하는 사람에서도 섭섭할 수 있습니다. 서로 상대를 위한다고 하는 말이 상처가 되기도 하지요. 우리는 너무 가까이에서가 아닌 한발 물러서서 상대를 바라볼 때 더 아름답게 보일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야속해 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다만 너랑 나랑은 살짝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걷기를 멈추었을 때 무릎 통증으로 진료를 받았습니다. '이런 청천벽력이!' 관절염이라고 진단을 내리더군요. 나는 심각해졌습니다. 내 말년을 어떻게 준비하고 보낼까 생각했습니다. 걷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하고요. 사지를 움직이는데 평생 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기던 나는 건강에 관해 교만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건강에 겸손하여 말년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기로 했지요. 관절염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혈압약도 복용하기로 했습니다. 건강을 자부하다가 큰 사고를 당하게 되면 나는 물론이고 가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게 되면 큰일입니다. 의사선생님은 무릎에 물이 차올랐다고 큰 주사기를 이용해 물을 뺐습니다.
처방된 약을 착실하게 복용하면서 운동을 같이 했니다. 통증이 많이 호전되어 걷기가 수월해졌어요. 의사선생님은 그러더군요. 다리 운동을 꾸준하게 하지 않게 되면 언젠가는 수술하게 될 거라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몸은 긴장으로 피부의 털이 쭈뼛 섰습니다.
어른들이 '세월이 눈 깜짝할 새 흘렀다'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살같이 '라고도 했습니다. 어릴 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때 어른들이 쉬던 한숨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계도 오래 쓰다 보면 마모가 되어 때때로 기름칠을 해주어야 합니다. 하물며 돈 들지 않는다고 혹사했던 내 몸에 많이 미안합니다.
나무가 우거진 이 숲속 산책로를 솔잎 향기 맡으며 걸을 때 행복합니다. 걸어가는 사람들 뒤로 갖가지 사연들이 바닥에 흘리며 남기고 갑니다. 숲속에는 죽은 것 같지만 버티어 서 있는 나무, 벼락을 맞고 쓰러진 나무, 그 옆에 생생히 살아 끝없이 솟아오를 것 같은 나무, 오랜 세월 쌓여 퇴적된 나뭇잎 위로 새로운 나뭇잎들이 수명을 다하여 떨어져 쌓입니다.
나는 오늘도 내가 뿌려놓은 삶의 흔적들을 찾기 위해 지나온 길을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