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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에세이 18화

할머니의 집

요양병원에서

by 옥희

몇 달간 요양병원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 장기 입원 중인 어른이나 환자들이 주로 계신 곳이라 모처럼 가족이 만나면 치매 있는 분도 그 시간만큼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면회시간이 되어 어른을 모시고 가족들을 만났다. 병실에서와는 달리 할머니는 이상증상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럴 때 자녀들은 부모님의 상태가 변함없이 여전해 보인다고 할 때도 있다.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어 과거의 좋은 추억도 잊어가고 가족들의 얼굴도 잊혀갔다. 얼마 전까지도 어머니며 아버지였다. 그런데 찾아온 가족들은 늘 물었다. 내가 누구냐고. 할머니는 가족들의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 부담을 가져야 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눈빛이 할머니의 입술에 화살처럼 꽂아 놓았다.


어느 날 다리가 불편하고 약간의 치매가 있는 할머니 가족이 면회를 왔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대답하고, 드시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하시라 하면서 서로 휴대폰을 들고 미소로 응답을 보냈다. 데리고 온 손자, 손녀, 큰애, 작은애 등을 차례로 보여주며 훌쩍 들 자라 버리고 변해가는 자식들을 얼굴을 기억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어 헤어짐이 아쉬워도 서로 갈 길로 가야 할 시간은 무정하게 다가왔다. 다음에 찾아올 것을 기약하며 손들어 인사를 나누고 가족들을 따라가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눈빛을 모른 채 하고 할머니를 병실로 모시고 왔다.

침대로 옮겨드리기 위해 휠체어를 고정하고 자세를 편안하게 해 드리는데 할머니의 혼잣말을 듣게 되었다.

"애고, 내 집이 최고네"

많은 자식들은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셨다는 미안한 마음과 죄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은 이날까지 키워줬더니 이곳에 가뒀다는 서로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할머니의 그 한마디로 그동안 갖고 있던 나의 편견이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곳에서든 몸담고 오래 있다 보면 그곳이 내 집이 되는가 싶었다.

이제 어른들을 돌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아닌 내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해야 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하겠다.

혹여 집안에 어른들을 기관에 맡긴 분들이 있다면 너무 무거운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들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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