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재신론과 백혈구
신의 존재는 예전부터 논란거리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말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이미 납득할만한 답이 있습니다. 신증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 원자가 공간을 배타적으로 점유한다. 이것이 물질이고 존재이다.
- 또 그러고 보니 물질은 어딘가 위치한다. 이것이 공간이다.
- 물질은 상태가 변한다. 이것이 현상인데 현상은 시간이라는 장에서 이루어진다.
- 모든 물질과 현상과 시공간, 그리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범주까지, 그 총합이 바로 “신”이다.
그럼 이제 이른바 신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신은 존재라는 범주 안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포함합니다. 자연, 혹은 우주는 신에게 포함되고, 세상에 무엇인가가 없지 않고 “있다”면, 신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관을 “범재신론”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이들도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고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28, 새번역]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골로새서 1:16-17]
범재신론이 말이 된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게 기독교와는 무슨 상관이냐고, 기독교는 인격신을 믿고 있지 않냐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범재신론은 신학계에서 지배적인 신관입니다. 성서(사도행전 17:28)와 고대 교부 이레니우스에게서도 “만물이 신 안에 존재한다”라는 서술을 발견할 수 있으며, 중세의 어거스틴과 아퀴나스, 현대의 거장 틸리히와 칼 라너 또한 범재신론을 받아들입니다.* 물론 신자 다수가 기적을 일으켜 세상에 개입하기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가끔 재앙이나 행운을 가져다주는 인격신(초월적 유일신론)을 믿고 있는 것은 사실이긴 합니다.
여간 범재신론을 수용하는 기독교인들은 신이 임의로 세상에 개입하지 않으며 세상은 법칙을 따라 움직인다고 믿습니다. 여기서 또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이 개입하지 않고 세상이 법칙을 따라서만 움직인다면, 무신론과 다른 것이 없지 않나?” 기독교 범재신론이 무신론과 다른 것은 “신의 품성이 선하다”고 믿는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인격신론과 범재신론이 통합됩니다. 선한 인격을 지닌 신 안에 세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은 법칙을 따라서 움직이지만, 그 법칙의 결과로 세상이 나아질 거라는 전망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 속성이 선하다는 진술은 세상은 그 고통의 양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음을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도식화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원에서 음영이 있는 부분은 세상의 악과 고통을 가리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영역이 시간이라는 과정을 거쳐 점차 줄어들게 되고 결국에는 완전히 없어질 거라고 믿는데, 이때를 “종말”이라고 부르고 이 세상의 완성된 상태를 “하나님 나라”라고 부릅니다. 종말이란 말도 오해를 많이 받아왔는데 사실 기쁜 날이고 그래서 교리를 알고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종말디 얼른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가지거나 선행할 필요 없이 시간만 지나면 세상이 완성되는 것 아닌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기독교인들은 신이 세상에서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자신들이라고 믿는 대단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들 또한 존재의 일부이며, 자신들의 연민과 봉사심 또한 법칙의 일부이고, 자신들의 희사와 봉사도 현상의 일부기 때문입니다.
몸의 비유는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몸은 여러 기관으로, 그 기관은 다시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의 신이라고 할 수 있고, 이 몸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균과 바이러스가 들어왔다고 합시다. 이때 병균을 잡는 백혈구가 몸에 충분하다면 건강을 빨리 회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면역시스템이 좀 비리비리할지라도 오랜 시간에 걸쳐 나을 수도 있고, 세포들은 상상할 수 없는 외부 세계에서 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이 백혈구들이 몸을 지키는 근본적인 방법임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부작용이 생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백혈구들이 많아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백혈구와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꼭 기독교에 귀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 기독교가 길을 좀 잘못 들었을 때 비기독교인은 무조건 죄인이고 지옥에 갈 거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천주교 신학자 칼 라너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백혈구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듯이, 건강한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람들을 다양한 강점을 지닌 든든한 동료로서 환대합니다.
*마커스 J. 보그,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 김태현 역, (비아, 2019), 106-111.
**한스 로슬링 외 3명, 『팩트풀니스』, 이창신 역, (김영사, 2019), 7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