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샘 Aug 01. 2021

프리모던, 모던, 포스트모던

포스트모던의 함정

프리모던(센 사람이 옳다) - 고대, 중세

근대 이전을 가리키는 프리모던(pre-modern)은 논리성, 합리성보다도 힘(권력), 지위, 전통(신앙)을 우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프리모던 사회에서는 다툼이 있을 때 주먹 센 사람, 기사나 영주, 사제의 결정을 따르게 된다. 또 강자의 이익이 타당성이나 공익을 무시하고 관철되기도 한다. 거부엔 보복이 따르기 때문이다.

종교재판을 받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Joseph-Nicolas Robert-Fleury 그림

갈릴레이가 이 시기의 인물이다. 천체와 물리에 대해 훨씬 더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고 연구결과가 참인데도 불구하고 비전문가인 사제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해야 했다.

     

모던(옳은 게 옳다) - 근대

모던은 근대라는 뜻이다. 이 시대에 산업과 인문학,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발달했다. 종교나 사회적 지위보다도 인간의 이성과 검증가능성이 훨씬 신뢰할 만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불필요한 과거의 인습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인간의 탐구심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전과 달리 권위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정의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무엇이 정의인지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포스트모던(옳은 게 전부는 아니다) - 현대

모던은 완벽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모던사회에서 옳다고 여겼던 것은 백인, 남성, 기독교인, 중산층 이상 지식인들의 세계관과 이익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들은 보편적인 참을 추구하는데도 불구하고, 약자와 소수자들의 상황이나 고통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열린 여성참정권 시위 퍼레이드(왼쪽), 흑인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오른쪽). 여성참정권의 획득과 인종차별의 철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쾌거이다.

단일한 관점만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없다. 다양한 입장의 공존이 필요하다.”는 통찰이 포스트모던의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여성운동, 흑인민권운동, 노동운동 등이 급물살을 탔다. 소수의견에도 경청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전체를 더욱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상식이 되었다. 다양성과 존중은 포스트모던의 핵심가치였다.


시대구분

모던사회라고 해서 모두가 모던해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프리모던한 사람이 많았고 배움이 적을수록 그랬다. 그러나 모던사회라는 것은 모더니즘적 사고가 주도권을 잡았다는 의미이다. 그 사람의 지위가 어땠든, 타당한 근거를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 그렇지 못한 권위자의 말보다 더 믿을만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는 포스트모던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모던과 다르게 포스트모더니즘이 다수파를 형성한 것을 가리키진 않는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여전히 소수이다. 포스트모던사회라는 것은  포스트모던적 사고가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프리모던 – 힘이 지배하는 사회

모던 – 프리모던을 극복하고 합리성이 주도하는 사회

포스트모던 – 포스트모던적 사고가 생겨난 사회

     

셋의 관계: 모던을 중심으로 상호보완

프리모던, 모던, 포스트모던의 이상적인 관계는 모던을 중심으로 상호보완하는 것이다. 프리모던은 효율성면에서 필요하다. 매사에 심사숙고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이 높은 수준의 합리성을 갖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데 있어 직무상의 위계는 필요하고 의견이 서로 다를 때는 상급자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단, 모던사회에서 상급자에게는 더 많은 책임감, 지식, 분별력이 요구된다. 이것이 우리가 무능한 낙하산 상사에게 분노하는 이유다.


포스트모던은 모던의, 정확히는 모던적 사고를 바탕으로 사회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사회 각 분야를 주도하는 엘리트들은 대개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 남성인데, 이들 바라보는 세상은 그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좋은 처지에서 살아온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겪어본 고통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


약자들은 무엇이 문제이고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안다. 이것은 엘리트들이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지식정보이다. 따라서 문제의 당사자들은 사회의 당면 과제와 해결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우선권을 지니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함정

그러나 완벽해 보이던 포스트모던도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포스트모던의 첫 번째 함정은 일부 소수자들이 충분한 지각없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담론을 접했을 때 프리모던한(이기적인) 태도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약자라는 입장을 이용해 타인에게 양보와 자신들의 주의주장에 대한 동의를 강요하는 형태로 발현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반론이나 거부에는 보복으로 대응한다. 내세울 게 없었을 뿐 내면은 프리모던한 사람들이 포스트모던이라는 허울을 쓰고 민폐 끼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소수자(포스트모던)옳은 것(모던)강요해도 되는 것(프리모던)이라고 생각해버린다. 이런 퇴행이 일어나면 건설적인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이는 모던의 합리성과 정의, 포스트모던의 다양성과 존중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건강한 포스트모던은 다양한 의견을 각각 존중하고, 주류 입장이 있더라도 강요하지 않고 소수자 의견에 경청하는 것이다. 


두 번째 함정은 모던이 과거의 것이고 과거의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약이다. 포스트모던은 모던을 대체하거나 부정하지 못한다. 모던의 기반 위에서 존재한다. 모던은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때 옳은 것을 남기려고 했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약자들은 고통의 문제제기에 있어서 분명한 우선권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절규를 넘어서 주장이 되었다면 근거를 대야 하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 환자는 자기가 어디가 아픈지 제일 잘 알지만 치료법까지 정통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목소리는 그 타당성을 입증할 때 비로소 다른 이들에게 수용된다.

     

기독교에서 프리모던, 모던, 포스트모던

중세 이전의 종교는 과학보다 위에 존재했다. 질문을 거부했으며 순종을 요구했다. 근대가 되자 교회는 비전문 분야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고 다른 인문학, 과학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현대신학은 기독교의 기존 세계관, 교리들이 "옳음, 타당함"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인, 남성, 중산층 이상, 고학력자, 기독교인이라는 필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흑인신학, 여성신학, 생태신학, 남미해방신학, 퀴어신학 등 비주류 계층의 성서·교리 해석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과격하거나 엉뚱한 주장도 나오지만 타당한 것들은 다시 주류 체계로 수용되어 교리를 더 세련되게 만들어주었다.


신학은 포스트모던까지 발전했는데 다수 한국 교회, 기독교인들은 프리모던 비율이 높다. 그런 만큼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 사이의 간극은 커졌고, 교세는 크게 감소했다. 혹자는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한 공룡들의 비유를 들곤 한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자주 먹는 치킨이 바로 공룡이라고 한다. 이전엔 다른 종인 줄 알았으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공룡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조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새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한 공룡이다. 기독교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