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스라엘 역사와 지리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와 성경은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 그 자체가 어떤 지혜와 교훈, 감동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건 역사학의 해석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평가이며 자신들의 정체성과 미래상을 담은 책입니다.
강의 목적은 인물, 배경을 알려줌으로써 설교나 다른 교육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문학의 3요소가 뭐냐 하면, 인물•사건•배경입니다. 설교는 사건과 그 의미를 전달합니다. 인물 배경 설명은 대개 짧게 넘어가기 때문에 미리 알고 있으면 설교를 더 유익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0. 지중해와 근동의 지리
이스라엘 역사를 알려면 우선 지중해와 근동의 지리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지중해는 유럽과 아프리카로 둘러싸인 바다죠. 이 동쪽에 튀어나온 반도가 터키고, 그 남쪽에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있는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그전에 눈여겨봐야 하는 곳은 이집트, 그리고 현재의 이라크와 이란입니다.
흔히 4대 문명이라고 하지요. 이곳은 인류 최초로 넓은 영토를 다스리며 변경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화와 기술을 자랑하던 제국들이 등장했던 곳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냐면 한국 양쪽으로 중국이 두 개 있는 부담감이라는 뜻이죠.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방어에 유리했습니다. 산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중국이라는 거대 문명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했지요. 가장 지위가 낮을 때가 몽골 원나라의 부마국 시절 고려죠. 그 몽골을 상대로 말입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은 그다지 지리적으로 방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양쪽 제국에게 시달리며 살아야 했고, 중간부터는 그냥 지배를 당합니다.
넓은 지역을 폭력으로 다스리는 제국이 아닌 피지배 민족에서 나온 사상, 그게 유대교 기독교입니다. 그 독보성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는 통로가 됩니다.
지리는 간략히 둘러보았으니 이제 역사를 시작하겠습니다.
1. 족장들의 이야기
기원전 2000년쯤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우르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그곳에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들이 큰 나라를 이루게 해주겠다"라는 약속을 하고 도시를 떠나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가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일가를 이끌고 이주합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거쳐 손자 야곱이 족장이 되고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아 부족의 규모도 커졌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 워낙 큰 기근이 닥쳤을 때 이집트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 중 요셉이 먼저 이집트에 가서 출세했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이 1편 족장사입니다. 이 단락은 우리나라의 단군설화처럼 그 사실성이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서구의 역사기술이라는 것이 시작된 원년은 기원전 430년, 헤로도토스의 <역사-페르시아 전쟁사>입니다. 그전에는 신화, 전설, 민담이 비석, 노래, 구전 등으로 전해졌죠. 사실과 허구, 과장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시기예요. 족장사도 그런 때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묘사하는 모든 세부사항이 다 사실이진 않겠지만 100% 창작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가령 단군신화도
- 북쪽에서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 그 이주자들은 기마기술, 농경, 목축에 있어서 토착민보다 앞선 문물을 지녔다,
- 토착민 중 곰부족과 연합했고 호랑이 부족을 몰아냈다.
이상의 내용은 사실에 부합할 거라고 해석합니다.
마찬가지로 족장사에서도
-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있었다.
- 그중 상당수는 이집트로 이주했다.
정도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2. 출애굽이야기
야곱과 12아들의 부족이 이집트에 정착하고 수백 년이 흘렀습니다. 아마도 기원전 1200년대쯤 되었을 때 출애굽이 일어났을 거라고 합니다. 출애굽은 애굽=이집트에서 탈출한다는 뜻입니다.
옛날 요셉 때 정착이 수월했던 것은 당시 이집트 왕조가 이집트 본토 출신이 아니라 이민족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원나라 청나라 때처럼 북방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거죠.
그런데 긴 시간이 지나 그 왕조를 몰아내고 이집트 토박이들이 왕권을 잡았을 때, 히브리인들(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눈엣가시였습니다. 20세기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볼 때처럼 말이죠.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자기 영토 내에 자신과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민족에게 더 잘해주고 그들은 좋아하는 경우는 그다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교, 기독교가 낯선이들에 대한 환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죠. 작년, 올해 표어가 뭡니까? "나그네와 이웃을 환대하는 교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집트 왕=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심하게 대했습니다. 신도시 건설을 진행하면서 과도한 노역을 시켰죠. 고대국가는 세금을 농산물과 노동으로 받았습니다. 그중 노동을 "역"이라고 합니다. 역에는 군역과 노역이 있죠.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저수지 짓는다고 고을 사또가 마을 주민들에게 시키면 주민들은 그냥 해야 하는 거였습니다. 히브리인들은 견디다 못해 이집트에서 탈출하기로 합니다.
이때 히브리인들을 조직해 대탈출을 실행한 뛰어난 리더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나온 히브리인들에게 십계명과 계약법전(출 20-23)이라는 법과 윤리체계를 마련해 줍니다. 이게 바로 율법입니다.
이집트라는 공동의 적, 대탈출이라는 강렬한 공동의 기억, 그걸 성공으로 이끈 모세에 대한 존경, 이들을 탈출시켜 자유롭게 하고 법과 질서를 부여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합쳐져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이 탄생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부분이 있죠. 일본제국이라는 공동의 적, 독립이라는 강렬한 공동의 기억, 그걸 성공으로 이끈 독립운동가분들에 대한 존경. 그런 동질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되었던 거죠. 우리에게 8.15가 독립기념일이듯이 유대인들은 봄에 있는 유월절에 출애굽을 기념합니다.
결론적으로, 구약에서는 모세와 출애굽, 거기서 나오는 율법이 제일 중요하단 것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3. 가나안 정복이야기
이스라엘 민족은 팔레스타인으로 침공합니다. 당시에는 팔레스타인을 가나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규모가 상당해졌기 때문에 이전처럼 얌전히 정착하지는 못했고, 토착민과 무력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성경에서는 토착민 대부분을 죽였다고 묘사되어 독자들이 놀람과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학계에서는 민족과 종교의 순수성을 강조하고자 했던 후대의 견해가 반영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복전쟁 자체와 그 결과 건국된 이스라엘에서 이주자 세력이 권력을 잡은 건 사실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원래 엘, 바알, 아세라 등의 신을 믿는 다신교 세계관을 갖고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유일신 신앙이 주류가 됩니다(물론 지방이나 민간에서 다신교 신앙이 계속되어 왕과 제사장들의 골칫거리가 되긴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야곱의 열두 아들 이름을 따라서 12부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들은 각 지방을 차지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영토가 2만km²으로 전라도와 기가막히게 비슷합니다. 위 지도상 당시 영토는 눈대중으로 전라북도와 비슷합니다.
12부족은 연합하여 한 나라이긴 하지만 왕은 없었습니다. 이런 형태를 부족연맹이라고 합니다. 각자 자급자족하며 살다가 외부 침략이 있으면 "사사"라는 임시 리더를 만들어 전쟁을 치르게 했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옥저, 동예, 진한, 마한, 변한 이런 나라들이 이와 비슷한데, 통합 왕이 없고 자잘자잘한 각 지역마다 군장이 있었습니다. 이를 군장국가라고 하고, 이러다가 통합 왕이 생기면 연맹왕국, 중앙집권이 이루어져 군장이 아니라 중앙파견관리가 지방을 다스리게 되면 고대국가가 됩니다. 한반도의 고대국가가 고구려, 백제, 신라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시기를 사사시대라고 하는데 200년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4. 짧은 통일왕정과 남북분열
나라가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잉여생산물도 많아지고 군사력도 생기다 보니 연맹왕국으로 이행합니다. 성경 저자들은 왕국, 제국, 도시, 지배, 폭력 이런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왕이 등장하는 것을 좋지 않게 묘사합니다만, 어쨌든 왕이 생겼습니다.
초대 왕으로 사울이 등극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팔레스타인 서쪽지방에 사는 블레셋과 전쟁을 하다가 죽게 됩니다. 11지파(부족)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웁니다만, 유다지파(부족)는 사울이 그토록 견제했던 지지율 최고 전쟁영웅 다윗을 왕으로 세웁니다. 두 세력은 싸우게 되는데, 다윗이 이기고 통합왕이 됩니다. 딱 기원전 1000년이어서 외우기 쉽습니다.
다윗과 가장 비슷한 우리나라 왕은 태조 이성계입니다. 민중의 압도적인 지지, 탁월한 군사능력. 이성계가 개성에서 서울로 도읍을 바꿨듯이 다윗이 수도를 바꾸니 그곳이 예루살렘입니다.
다윗은 별 탈없이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솔로몬은 수완이 좋은 인물이었고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이스라엘은 제법 부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에 대한 이미지는 조금 과대평가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탁월한 왕이었다면 중앙집권의 토대를 놓을 만도 하지만, 솔로몬 사후 이 연맹왕국은 둘로 갈라집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남유다로, 나머지 10지파가 북이스라엘이 됩니다. 물론 분열 후에도 같은 종교를 공유하고, 외국보다야 가깝게 지내지만, 둘은 별도의 왕조를 이룹니다.
5. 두 왕국의 몰락, 식민지 시대 시작, 포로생활
북이스라엘은 722년에 아시리아에게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되면서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솔로몬 사후 200년 정도 유지되었습니다.
남유다 보다 더 넓고 비옥한 토지와 더 많은 인구를 가졌지만, 왕조의 정통성이 부족한 점, 가나안 토착민 인구가 많아 종교적 통일성이 자리 잡기 어려웠던 점, 왕들이 자주 암살을 당했던 점 등이 약점이라고 합니다만. 전주완주 뺀 전라북도 크기인데 거대 제국이 침공하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아시리아는 민족정체성을 흐려 놓고자 외국인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켜 혼혈정책을 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미워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청나라에 공녀로 갔다 돌아온 환향녀들에게 조선사람들이 무척 못되게 굴었는데 그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700년 뒤 예수님은 이런 풍토가 온당치 않다고 보셨는데 그건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그런데 제국이 다른 나라를 정복했다고 그곳 문화와 종교를 다 말살하지는 않습니다. 정치와 전쟁은 게임이 아니고, 황제는 돈 안 되는 일이나 귀찮은 일을 일부러 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식민지의 세금이고 반란 일으키지 않는 한 괜한 간섭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북이스라엘은 총독지배를 받았지만 종교는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남유다왕조는 아시리아 침공에서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아시리아를 무너뜨리고 메소포타미아 천하를 잡은 바빌론에게 기원전 587년 정복당하게 됩니다. 성전도 파괴됩니다.
이때 바빌론은 왕족, 귀족, 지식인 등 엘리트 위주로 바빌론으로 강제이주 시킵니다. 이들은 신분을 잃고 바빌론에서 평민으로 살게 됩니다. 이때를 "바빌론 포로기"라고 하지요. 하지만 이 낮아진 지위, 타지에서 받는 차별의 서러움, 반면 여전히 높은 자의식과 지식, 풍부한 구전과 역사 및 사상 문서, 그리 민족 정체성과 종교를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결합되어 낳은 인류의 걸작이 있으니 바로 구약성경입니다. 지식인이 약자가 되었을 때 쓴 경전은 세계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이때부터 제사중심이었던 유대교가 경전과 율법 중심의 종교로 발전하게 됩니다. 제사는 교리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드릴 수 있었는데, 바빌론이 성전을 파괴했거든요. 하나님과 만나는 공간을 잃어버린 이들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만들기로 했고, 원래 그냥 쉬는 날이었던 안식일은 정기집회에 안 참여하면 크게 혼나는 아주 중요한 날이 되었습니다. 학원,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다면 공부하는 시간이라도 꼭 지켜야 하는 겁니다.
6. 포로귀환, 관대한 페르시아
또 시간이 지나 메소포타미아 천하의 주인이 바빌론에서 페르시아로 바뀌었습니다. 페르시아는 바빌론보다 더 관대한 식민지 정책을 폈습니다. 이스라엘 포로들의 본국귀환과 성전재건도 허락해줬습니다.
이스라엘 포로들은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는 아브라함의 심정으로 바빌론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성경도 가지고 왔지요. 성경이 바빌론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7. 지배자 손바꿈, 알렉산더
페르시아도 얼마 안 갑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문명의 저 변두리 동네인 줄 알았던 그리스가(정확히는 마케도니아가) 영토를 넓히더니 이집트를 정복하고 메소포타미아까지 장악한 것도 모자라 인더스강까지 진출한 것입니다. 이 거대한 헬레니즘제국을 이룬 것이 바로 알렉산더입니다.
알렉산더는 역사상 가장 비범한 왕입니다. 20살에 즉위한 뒤 거병하여 6년 만에 이집트의 파라오, 페르시아 샤한샤(왕중왕)가 되었습니다.
잘생긴 얼굴, 강력한 완력, 타고난 호승심, 완벽한 전략전술과 통솔력,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군사 천재. 살아서 신의 아들이자 전쟁의 신이라고 불린 남자.
인상을 얼마나 진하게 남겼는지 후대의 모든 장군과 정복군주의 워너비가 되었고 로마의 황제신격화의 원형이 됩니다. 이게 또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칭호와도 연관되는데 이건 나중에 다룰 내용입니다.
알렉산더는 7년 뒤 33세에 사망합니다(B.C.323). 하나뿐인 아들이 태어나는 것도 못 봤죠. 아들은 14살에 독살당하고 그의 제국은 알렉산더의 장군들에 의해 갈라지고 맙니다.
그중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것이 셀레우코스제국(시리아왕국)입니다. 이스라엘도 그 일부였습니다.
8. 마카비 독립전쟁
BC 167년, 셀레우코스제국은 모종의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한 간섭과 억압을 강화합니다. 이에 마타티아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납니다.
독립전쟁은 오래갔습니다. 마타티아가 죽고 아들 마카비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마카비는 대활약을 펼치며 유대지역을 확보했습니다. 마카비 사후에도 전쟁은 이어졌고 BC142년이 되어서야 독립에 성공합니다.
이 독립국가 시절 왕조를 하스모니아 왕조라고 부릅니다. 이후 BC 63년까지 8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9. 로마의 지배
이 하스모니아 왕가를 몰락시킨 게 누구냐면 카이사르의 라이벌, 로마의 가장 유명한 장군, 폼페이우스입니다.
폼페이는 하스모니아 왕조의 정복전쟁으로 통일되어 있던 이스라엘 영토를 나누어 각각 통치하게 합니다. 유대와 예루살렘은 시리아(로마 속주) 총독 휘하의 행정장관이 직접 통치했습니다.
10. 헤롯 대왕, 반독립국의 지위를 얻다
기원전 1세기 이스라엘에 헤롯이라는 수완가가 있었습니다. 헤롯의 아버지는 카이사르에게 줄을 잘 대서 유대 행정장관 지위를 얻어내 헤롯을 갈릴리의 행정장관으로 삼았습니다. 헤롯은 노련한 감각으로 형의 통치지역도 빼앗고 하스모니아 왕가 사람을 부인으로 맞이하면서 이스라엘 전체를 장악하며 로마로부터 왕으로 즉위하는 것을 승인받습니다.
친로마파 인물이기에 성경에서는 좋지 않게 묘사되지만, 이스라엘의 독립성과 종교의 자유를 제고해줬을 뿐만 아니라 성전을 아주 으리으리하게 증축해주었기 때문에 지지자가 제법 있었고 현대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반면에 아들들은 그다지 유능하지 않았습니다. 아들 아켈라오스가 BC 4년 유대의 분봉왕(영주)이 되었지만 통치활동에 워낙 마찰이 많아 (일설에 따르면 유월절에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강제진압하며 3000천명의 사망자를 만들어) 10년 뒤에 로마에 의해 폐위되고 갈리아(프랑스)로 유배가게 됩니다. 그 이후로 유대지방은 로마총독이 직접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관심대상 지역이 된 것이죠.
11. 예수님 활동시기의 이스라엘
위 지도에서 보듯이 갈릴리는 헤롯대왕의 또 다른 아들 안티파스가 분봉왕으로 통치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곳의 주민이었습니다.
안티파스는 아버지처럼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이를 위한 정치자금(뇌물)을 위해 식용작물 농지를 줄이고 상품작물 농지를 늘리는 정책을 펴서 식품물가를 폭등시키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 성전, 로마, 분봉왕에 대한 세금의 삼중고를 겪고 있던 민초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예수님이 왜 그렇게 먹는 것과 상부상조에 주목했는지 이해하게 해줍니다. 세례요한은 안티파스의 그러한 행태를 비난했는데 안티파스는 요한을 처형했습니다. 예수님이 활발히 활동하여 유명세를 얻었을 때 안티파스는 "요한이 살아 돌아왔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 안티파스는 왕이 못 되었습니다.
유대-사마리아 지방은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다스렸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 기간에 예루살렘에서 소요를 일으킨 예수님을 체포했습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 및 당시 예루살렘에 머무르던 안티파스와 모종의 합의를 했던 것 같습니다. 빌라도는 제자들까지는 내버려 두되 주동자인 예수님은 처형하기로 합니다.
12. 마지막 반란과 진압, 완전한 멸망
66년 유대인들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마카비의 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로마는 신속하게 진압했고 이스라엘 전역은 로마의 속주가 되고 성전은 파괴되었습니다.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이란 개념이 사라졌고, 수많은 유대인들은 근동과 유럽으로 흩어져 디아스포라(유대인 타운)를 이루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역사는 막을 내립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은 이후 600년대 까지는 동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이슬람국가에 팔레스타인을 빼앗기게 되면서 해당 지역은 이슬람화 됩니다.
유대인들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나라에 가서나 높은 교육열, 사업수완, 자산관리, 신앙심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대개 잘 살았습니다. 현대의 유대교는 이들의 후예입니다.
현대의 이스라엘은 복잡한 내력을 거쳐 건국되었습니다만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3. 요약
어느 나라에 지배당했는지만 알면 됩니다.
이집트
독립국가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헬레니즘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끊임없이 독립과 민족의 구원을 염원하며 의로운 삶과 서로 돕는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이 구약성서의 역사관입니다.
14. 연습문제(블록지정하면 답이 보입니다)
1) 출애굽은 ( )에서 [ ]이 탈출한 사건이다.
이집트, 이스라엘
2) 통일왕국 시절 이스라엘의 세 왕은 누구인가(1000)?
사울, 다윗, 솔로몬
3) 분열왕국 둘의 이름은 무엇인가?
북이스라엘, 남유다
4) 이스라엘의 수도는 어디였는가?
예루살렘
5) 북이스라엘은 어느 제국에게 멸망했는가(722)?
아시리아
6) 남유다는 어느 제국에게 멸망했는가(587)?
바빌론
7) 바빌론은 유대인 엘리트들을 바빌론으로 강제이주시켰다. 이 포로들은 정체성 유지를 위해 < >에 정기 모임을 하고 ( )를 지키고 [ ]를 집필했다.
안식일, 율법, 구약성경
8) 유대인 포로의 본국귀환과 성전재건을 허락해준 제국은 무엇인가?
페르시아
9) 페르시아를 정복한 그리스계 왕은 누구인가(330)?
알렉산더
10) 셀레우코스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해낸 전쟁을 뭐라고 부르는가(167)?
마카비전쟁 = 마카비혁명
11) 하스모니아 왕가를 멸망시키고 다시 이스라엘을 총독통치한 제국과 그 장군의 이름은(63)?
로마제국, 폼페이우스
12) 기원전 1세기 로마로부터 왕위를 인정받고 성전을 증축한 이스라엘의 왕은(1)?
헤롯대왕
13) 예수님이 살던 지역의 영주(분봉왕)는 누구인가(AD 30)?
헤롯 안티파스
14) 이스라엘은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지만 진압되어 성전이 파괴되고 국가와 영토를 모두 잃게 되어 현대까지 이른다. 이 유대-로마 전쟁(1차)의 연도는?
AD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