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자의 귀팔랑팔랑 기록.

차를 사는건 너무 어려워 ~

by Rr

드디어 차를 샀다. 어찌 보면 하늘색, 어찌 보면 회색의 작고 귀여운 BMW. 출고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결심부터 계약까지 꼬박 두 달. 두 달 동안 나는 소비자가 아니라, 방랑객처럼 자동차 브랜드 사이를 떠돌았다.


서울 중심부에 살면 사실 차가 굳이 필요 없다. 지하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택시도 잘 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수록 차를 모른다는 게 묘한 패배처럼 다가왔다. 운전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마다 따라오는 어색한 웃음, ‘아직도 운전을 못해?‘라는 농담들이 쌓였다. 무엇보다도, 차가 있으면 내 세계가 조금 더 넓어질 것 같았다.


주말 오전, 갑자기 경기도 외곽의 카페가 가고 싶을 때. 택시 기사님과 함께 드라이브를 떠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손님으로서의 여행이다. 내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달려가는 감성과는 분명 다르다. 그 작은 패배의식을 뒤집어보고 싶어, 나는 차를 사기로 결심했다.


처음 후보는 아반떼였다. 부담 없는 작은 국산차. 첫 차로는 무난하다 했다. 중고 가격 방어도 잘 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현대자동차 매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옛말이 있지 않은가. 모닝 사러 갔다가 람보르기니 산다고. 아반떼 견적을 받다 보니 ‘소나타는 자동주차가 된다던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소나타 견적을 받다 보니 ‘G70은 훨씬 예쁘던데?’로 이어졌다. 한 번 높아진 눈은 내려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G70 옵션 공부에 빠졌다. 유튜브 리뷰를 보며 화면에 매달렸다. 베이지 시트를 넣을까, 관리가 쉬운 브라운이 나을까. 하나하나 옵션을 고르다 보니 가격은 어느새 6천만 원 가까이 치솟았다. 하지만 그 영롱한 베이지 시트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 합리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상담해주던 영업사원도 끊임없이 안부연락을 해왔고, 그 집요함에 이상하게도 신뢰가 갔다. “영업은 이렇게 해야지” 하며 속으로 감탄하기도 했다. 게다가 G70은 인기 차종이 아니라는 점도, 조금은 홍대병에 걸려 있는 내 마음에 묘하게 끌렸다.


하지만 옵션을 고르던 중, 단종 소문을 들었다. 공식 발표는 아니었지만, 머릿속에 “곧 사라질 차”라는 꼬리표가 붙자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나중에 유지보수도 어렵고, 지금으로치면 에쿠스 몰고 다니는 아저씨처럼 보일까? 그렇게 나는 마음을 접었다.


마음을 접으니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이번엔 벤츠 매장. 초보답게 A클래스를 보러 갔지만, 막상 실내는 기대보다 못했다. ‘이럴 거면 아반떼가 낫다’는 생각까지 스쳤다. 대신 C클래스를 보니 확실히 고급스러웠다. 첫차로 그랜저를 산 친구도 “첫 차라고 굳이 무난하게 갈 필요 있겠냐”며 부추겼다. 내 귀는 다시 팔랑거렸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BMW였다. 영업사원은 초보 운전자라면 3시리즈가 적당하다며 권했다. 마침 전시장에 있던 차는, 어찌 보면 하늘색, 어찌 보면 회색이었는데, 그 오묘한 빛깔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순간, 모든 계산이 멈췄다. 옵션도, 가격도, 브랜드 이미지도 중요했지만 결국 나를 사로잡은 건 그 색이었다. 벤츠의 고급스러움도, 제네시스의 베이지시트도 다 잊혀졌다. 나는 그 차에 반해버렸다.


결국 3시리즈 세단으로 골랐다. 합리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냥 그 색에 홀려버린 결과다. 솔직히 BMW 3시리즈 세단은 후보 중 가장 고급진 것도 아니고, 옵션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가격이야 세 후보 모두 도토리키재기 수준이고. 하지만 뭐 어떤가. 내 첫 차가 ‘합리적인 소비의 교과서’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냥 마음에 든 걸 샀다. 사실 그게 제일 재밌잖아. 지금은 오매불망 출고 날만 기다리는 중이다. 핸들을 잡고 달릴 그 순간이 상상만으로도 이미 내 일상이 조금은 달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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