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오븐 풀 가동하며 앉은자리에서 웹툰 한 작품 다 읽은 날.
내게는 최악이었던 상대가 누군가에겐 운명의 상대가 되고, 한때는 너무나 가까웠던 사람이 어느새 남보다도 못한 야속한 상대가 된다. 이쯤되면 문제는 나에게 있는게 아닌지.
따지고보면 내가 선택한 고독이지만, 가끔은 초라한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수진 작가님의 <뮤즈 온 유명>
웹툰을 읽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고였다. 요즘 호르몬이 날뛰는 시즌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마음이 건드려진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이런 문장을 나 스스로 쓰라고 하면 잘 못 쓸 것 같다. 책을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말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고, 어쩌면 둘 다 아니라서 더 그런가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문장이 내 속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순간이 있다. 내가 오래 생각만 하고 말로는 못 풀어내던 감정들이, 단정한 문장 하나에 조용히 정리되는 그런 순간.
아마 그래서 나는 이런 문장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혼자일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이렇게 예기치 않게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들이 찾아오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꽤 늦게 인정하는 편인 것 같다. ‘별일 아니야’,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넘기다가도 어떤 문장 하나, 어떤 장면 하나에 갑자기 진짜 마음이 드러난다. 마치 잘 정리해둔 서랍이 어느 순간 혼자 벌컥 열리듯이.
웹툰 속 문장은 사실 새롭지 않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애초에 예측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각자의 타이밍이 있다는 것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래도 막상 그 말이 내 감정과 정확히 겹쳐지는 순간, 그 평범한 문장이 내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아, 나 다 괜찮은 건 아니구나’ 하고 조용히 인정하게 된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그 익숙함이 나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이라 괜찮다고 말해왔지만, 어떤 날은 그 고독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가끔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균열을 만든다.
그래도 이런 순간이 완전히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지금 어디에서 아프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해주니까. 누군가의 문장에 울컥하는 건 결국 아직 내 안이 살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느라 정작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 같다. 관계가 끝났을 때도,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그 뒤에 남아 있던 감정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계속 미뤄왔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을 꺼내놓는 게 쉽지 않은 이유는, 나조차도 그 감정을 정확히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다. 슬픔이라고 하기엔 너무 연하고, 외로움이라고 하기엔 너무 단단하고, 그 사이 어딘가에 흐릿하게 떠 있는 감정. 말로 붙잡으려고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그래도 분명한 건, 나는 지금 내 안의 빈자리를 알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빈자리가 누군가로 채워지길 바란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척하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나는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어떤 시선, 그런 아주 작은 것들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잘 살고 싶은 사람이고, 여전히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지만, 그게 너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이제 솔직히 인정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면서라도 조금씩은 내 마음의 모양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