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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돌프 Apr 05. 2023

학생이 행복한 학교

학생자치


#1. 학생자치,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시작점     


‘저는 저희같이 작은 학교에 왜 학생회가 필요하고 학생회장이 필요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맞아요. 학생 몇 명 되지도 않는데 그냥 바로 선생님한테 가서 얘기하면 되잖아요.’

‘귀찮아요.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게 편해요.’     


초등이 중심이었던 첫 학교.

초중등 대안학교였던 그곳에서 아이들은 학생회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로 저에게 여러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떤 부분들은 이해가 되기도 했었는데,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오랜 시간 동안 학교생활을 해온 아이들은 선생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교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문화로 받아들여 왔을 거예요.

아이들에게는 익숙하면서 편한,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문화가 알게 모르게 학교라는 공간을, 학생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학생회의 필요성과 같은 주제들 뿐 아니라,

학교의 모든 것들이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서로 함께 어울려 놀지도 않으며,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동아리축제나 모꼬지(소풍), 여행 등 더 재미있고 즐겁게 생활해 나갈 수 있는 학생들만의 문화는 그저 선생님들이 정해준 대로 하면 되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하는 것이 더 귀찮기만 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기력해진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제가 생각한 중요한 한 가지는 무관심이 낳은 무기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껏 자신들의 일이든 학교 일이든, 친구의 일이든 대부분 교사와 어른들이 나서서 해결해 주었으니, 별로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겠지요. 알아서 해결되었을 테니까요. 또한 반대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뭔가를 하고자 할 때에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 거예요. 대부분 어른들의 허락이 필요하거나, 하고 싶지만 어른들의 허락을 받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하지 못하게 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익숙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더 무기력한 일상으로 바뀌어 갔던 건 아닐까요?     


아이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와 상관없는 일, 또는 자신이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나의 일, 우리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같은 것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자는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자든지 말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요? 아니면 깨어있어도 아무것도 변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학생회장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이야기해 주고 싶었습니다. 학생자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이지요.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학교에서의 하루하루를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스스로가 학교생활을 재밌고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려는 그 노력 자체가 분명 스스로를 사랑하는 아이들로 성장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2. 산청간디학교와의 만남     


  저는 학생자치에 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교장선생님과는 학생자치법정을 도입하려고 연구하는 등 새로운 학생문화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가 생각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아이들에게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자치를 통해서 학생문화가, 학교 전체가 바뀌어 나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입니다.     


산청간디학교는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학교였습니다. 대안학교 교사가 된 이후, 대안교육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알게 된 학교 중에서 가장 학생들의 행복과 학생자치문화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한 결과를 보여주는 학교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생회가 학교에서 어떤 방식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이들이 배워나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산청간디학교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도 간디학교는 다들 한 번씩 들어본 눈치였고, 함께 가보자는 마음을 내어주었습니다.


간디학교를 방문한다는 연락을 드리고 난 다음, 아이들과 함께 만나게 된 산청간디학교는 저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신선하고 즐거운 자극과 촉매제였고, 아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놀라웠던 점은 학교 도착 후, 저희를 맞이해 주고 안내해 주던 사람이 선생님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학교의 손님을 맞이하고 학교를 소개하는 사람이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라니, 첫인상부터 다른 점이 느껴졌습니다. 이어서 간디학교 학생들의 안내로 수업참관과 학교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함께 점심을 먹은 뒤 간담회가 오후에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놀란 점은 간담회를 위해 함께 모인 교실에서도 간디학교의 선생님께서는 학생회장과 학생회에게 진행을 맡기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선생님을 따라 같이 일어나서 교무실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저는 저희 아이들이 저 없이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과 인사 후 궁금한 점들을 질문하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사실은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서 혼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또 아이들이 잘하고 있는지 올라가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에도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서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간디학교의 생활에 대해서 배웠고, 서로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문화에 저 또한 많이 놀랐으니 아이들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책에서, 또는 말로만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혹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학생이 학교의 주인 역할을 하는 학교가 있을까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이야기에, 그 모습에 감탄했고, 감동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우리 아이들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겠지요.     


  저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산청간디학교의 현관 옆에는 중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욕하지 말자’라는 대자보가 있었습니다. 전지 크기의 종이에 욕의 역사부터 우리가 쓰지 않아야 되는 여러 이유까지 가득 써진 이런 대자보가 학생들이 쓴 것이라니, 이런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어떤 학교든 어떤 사회에서든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에서 우리는 수많은 문제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때로는 사소하지 않은 것들까지도 말이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그러한 문제점들에 대해서 늘 관심을 두지 않은 채로 성장해 나갑니다. 이유는 당연히 그런 것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국어, 영어, 수학 공부해야지, 선행학습해야지, 좋은 대학 가야지,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지와 같은 어른들의 이야기들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결국 아이들은 무관심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입니다. 사소하고 일상적이지만, 훨씬 더 중요한 일들에 귀 기울이지 못한 채 성인이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산청간디학교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노사 바브는 ‘참다운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짧은 글 속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가르치는 일은 실제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교육은 체험하고 실험하고 소화시키는 일이다.’ 산청간디학교의 아이들은 비노사 바브의 말처럼 실제 생활 속에서 스스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문제점을 알고서 귀찮다고 외면하지 않고, 자기 일이 아니라며 눈감지 않은 채로 그것을 해결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문제점을 알고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를 거치면서 자라온 아이들은 분명 성장해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 나갈 힘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제가 그리던 학교의 문화였던 것입니다.      


  저에게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훨씬 더 좋은 자극제였겠지요. 산청간디학교에서의 배움은 큰 자산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와 아이들은 함께 더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고민하고 공부해 나갔고, 함께 학생회를 만들었고, 선거를 통해 학생회장을 뽑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모든 일을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같이 나누면서 체육대회, 여행, 축제, 캠핑, 더 나아가 입학설명회까지도 학생들 전부가 같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감사하게도 이런 저의 노력에 귀 기울여 주었던 아이들과 좋은 선생님들 덕분이었겠지요. 


아이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서 어떤 변화와 성장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이 더 많이 웃고, 더 함께 놀면서 학교에서의 시간을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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