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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앞에서 마지막 말-넌 날 사랑한 적이 없어

첫 번째 결혼이야기 5

by 핑크레몬



















이혼하신 분들은 법원 앞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어떤 말을 했나요?

아님 어떤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하면 좋을까요?


아무런 인사 없이 헤어지는 사람들도 많고, 마주치지도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첫 번째 이혼 때는 법정에서 서로 변호사 없이 진행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 둘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냥 말없이 가고 싶기도 했는데 그래도 마지막이니 인사는 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이니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더라고요.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20년 전에는 법정에서 이혼확인서를 각자에게 주는데 이걸 시청에 2주 안에 제출하면 이혼이 성립이 되었습니다. 둘 중 하나라도 이 이혼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이혼이 성립이 되지 않았습니다. 행여라도 그 사람이 이혼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을까 봐 마지막 식사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때도 그 사람이 여전히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어려서 그렇게 단둘이 밖에서 밥을 먹은 적이 거의 없었기에.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본인이 받은 이혼확인서를 줬습니다. 그건 본인이 시청에 내야 되는 서류인데 말이죠.

“내가 당신한테 그동안 잘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당신에게 이걸 줄게. 2주 동안 내가 갖고 있어 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당신이 알아서 해.”


이건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마지막에 한 번 더 이혼을 고려해 보라는 법적 장치인 겁니다. 아무리 법정에서 이혼을 결정이 나도 뒤집어엎을 수 있는 기회인 거죠. 그런데 그 서류를 저에게 줍니다.

위자료 0원, 양육비 0원, 재산분할 0원이라고 판사한테 좀 전에 혼나서 멜랑꼴리 해진 걸까요? 이제 와서 갑자기 착한 남편 코스프레를 하는데 그동안 폭력에 시달린 나는 그 모습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밥도 같이 먹고 싶지 않은데 비위를 맞춰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밥을 먹고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서류를 받아 드는데 5초 정도 감동했습니다. 처음 보는 모습이지만 마지막이라도 날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구나 싶어서 살짝 눈물도 날 뻔했습니다.


하지만 5초 후 폭력적인 모습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냥

'앗싸~~~ 신난다!'

하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2주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내야지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행여라도 그 사람 마음이 변할까 봐요. 그 서류마저 내가 들고 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식당을 나와서 갑자기 손을 잡자고 합니다. 남들이 보면 헤어지기 싫은데 억지로 이혼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아직 이혼확인서를 제출한 게 아니기에 마지막까지 비위를 맞추기로 했습니다. 애써 태연한 표정으로 있었지만 그 사람은 내 속마음을 알았나 봅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넌 지금까지 날 사랑한 적이 없어.”


살짝 우는 것 같은데 그냥 돌아섰습니다. 그 눈물을 구구절절이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봤자 의미가 없었으니까요. 바로 이혼확인서를 제출하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다음날 내기로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날밤 우려하던 전화가 왔습니다.


“이혼확인서 아직 안 냈지? 한 번만 더 생각해봐 주면 안 될까?”

“이미 냈습니다.”

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야 단념을 할 것 같았습니다.

잠시 정적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넌 정말 날 사랑한 적이 없구나;”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다음 날 시청 여는 시간에 맞춰서 맨 먼저 서류를 2장 다 제출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폭력적이던 남편이 나에게 가장 바랬던 게 사랑이었을까요?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렇게 때렸던 걸까요?

어쩌면 그 사람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지 않아서 때린 건지, 그 사람이 때려서 사랑하지 않은 건지 뭐가 먼저였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결혼은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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