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결혼했어도 난 이혼했겠구나
여기서 나는 지인 B입니다.
고등학교 때 첫사랑을 했고 그 첫사랑이 너무 좋아서 우리는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싸우면서도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나타나도 왜 저는 한번도 이별이라는 걸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그땐 그랬습니다. 그냥 너무 좋았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너무 설레여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너무 가벼워서 이러다 나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런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고 사랑이란 이런 모습이라고 단정지었던 때였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그 누굴 만나도 그런 설레임이 내게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설레임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하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내 인생에 있어서 그런 설레임을 느껴봤다는 사실로 만족을 해야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하게라도 아니 조금 모자라게라도 좋으니 설레임을 다시 한번 더 느껴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혼하고 한참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그 친구가 너무 그리웠습니다. 원하면 어떻게든 그친구랑 다시 연락이 될 것만 같은 확신이 들어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락처는 내 손에 들어왔습니다. 유부남일테니 평일 오후에 전화거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평일 오후 심호흡을 한번 한 다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 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예쁜 목소리가 나오게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그런데 받지 않더군요. 모르는 번호니까 안 받는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포기를 할까 망설이다가 한번더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왠지 이번에도 받지 않을 것 같아 목소리를 가다듬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받지 않더군요. 3번은 노력해보고 싶었는데 3번째도 전화를 거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서 내가 누구인지 문자로 간결하게 남겼습니다. 문자에 구구절절하게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저 이 전화번호가 누구의 핸드폰인지만 알려주면 본인이 전화를 걸지말지 정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5분도 되지 않아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2번 도전했던 그 전화번호가 내 핸드폰위에 떴습니다. 고등학생때와는 비교를 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살짝 설레였습니다. 그냥 다시 설레인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유부남에게 이런 연락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 긴 세월속에 어쩌면 그도 그 어떠한 이별을 겪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살짝 했던 것도 같습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그는 아주 밝게 웃으면서 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만날 수 있는 날짜를 잡자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20년만에 연락을 했는데 누군가 반겨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는 우리집 근처의 괜찮은 레스토랑을 조사해서 예약을 마치고 꼭 만나자는 말과 함께 문자를 남겨주었습니다. 이 문자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미 바람을 피고 있는 듯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같이 저녁 먹는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애써 위로하면서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대학생때 저는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는 군대를 갔는데 군대에서 어느날 전화를 해선 다짜고짜 제대하면 저랑 결혼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지금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군대에서 정말 생각을 많이 했는데 자신이 바보짓을 했다고 꼭 자신이랑 결혼하자고 했습니다. 군대란 정말 이상한 곳인가봅니다.
20년이 훌쩍 넘었는데 왠지 그렇게 늙지 않은 모습에 우리는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현재 유부남일 확률이 훨씬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너무 반가워해주는 그 모습에 저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들 하나 둔 유부남이었습니다. 저와 헤어진 이후 대학생때 연애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소개팅도 진짜 많이 했는데 우리들이 느꼈던 설레임을 가져다 준 여자는 없었다구요. 그래서 군대갔을때 그런 전화를 했었나봅니다. 군대에서 저와 결혼할 생각으로 버텼는데 제대하고 나서는 제가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찾아오지 않던 그 설레임이 취직하고 난 후에 갑자기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들도 낳았다구요. 정말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그 설레임을 찾은 그친구가 너무 부러웠습니다.
너무 착한 여자라고 하더군요. 너무 착해서 6년동안 바람핀 사실도 깜쪽같이 모른다고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했습니다. 왜 많이 안 늙었냐며 다시 설레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가끔 만나자고 같이 여행을 가자고 자신의 와이프는 착해서 속이기 쉽다고 했습니다. 함께 재테크를 잘해두어서 부동산을 팔수 없어서 이혼은 안 할 거라고 하더군요. 점점 더 개소리가 심해져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냥 알아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