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였습니다.
아들을 너무 사랑하신 전시어머니는 우리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신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선자리가 들어왔었는지 말하곤 하셨죠.
“**은행장 딸이 그렇게 우리 아들을 만나보고 싶어 했는데….”
“**회사 부사장도 우리 아들을 사위 삼고 싶어 했지.”
“**병원장은 우리 아들 보러 직접 온 적도 있었다니까.”
어느새 저는 **은행, **회사,**병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사실 상관도 없는데 말이죠.
어머님은 아들이 명문대 들어가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하셨고 그 꿈을 이루어 내어 행복하신 분이었습니다.
결혼 전까지 어머님 말을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는 그런 착한 아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님 마음에 드는 선자리에 나가지도 않던 아들이 드디어 여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렇게 슬프진 않았습니다.
저도 자식 키우는 입장이라 속상하겠다 싶었습니다.
저도 딸이 둘 있습니다만 어느 날 아이 있는 이혼남을 데려와서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님 마음이 이해가 되기에 참았습니다.
아니 결혼하지 말까까지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될걸 왜 하필 총각을, 그것도 명문대 나온 총각을 만나서 이 고생을 할까 싶기도 했습니다.
남편의 고집으로 결혼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은 결혼 후에도 위에 있는 말들을 저에게 종종 하곤 했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정도 화가 풀리시면 그만두시겠지 싶었는데 어머님은 참 고집이 세셨죠.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고 임신을 했는데 어머님은 제가 임신한 상황 속에서도 멈추지를 않으시더라고요.
그때는 눈물이 납디다.
뱃속의 아이가 들을까 봐 서러웠습니다.
몇 년을 버텼는데 멈추지 않는 어머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급기야 친척분에게
라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제 귀에 들리지 않게 말씀하시지 이제는 너무 서러워서 제 눈치도 보기 싫으셨나 봅니다.
가끔 생각이 나면 그때 한 번쯤은 대들어 볼걸 그랬나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저도 공부할 만큼 공부했거든요?
저도 우리 집에선 소중한 딸입니다.
저 구박할 만큼 하셨으니 이제 좀 그만하세요.”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던 며느리와 아들이 이혼했으니 우리 어머님 그때는 마음이 좀 편안해지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