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 읽어나간 마음의 단상
자본주의.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합리적 체계,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불평등과 착취를 유발하는 비합리적 체계, 또 누군가에게는 ‘편법을 부추기는 복잡한 규제’ 등 다양한 경제학적 혹은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정의가 되어왔다.
그렇다면 예술가에게 비춰지는 자본주의는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한 화가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야경 속에서 포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포착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불안함을 일반적인 캔버스가 아닌 판넬을 이용해 기존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을 시도해보았단다. 그 작품이 바로 'City Scape'이다. 작품의 의도를 미리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작품의 전체적인 구도가 곧 바로 수긍이 되었다.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비록 깊은 밤이지만 각종 간판, 네온사인, 가로등 불빛 등으로 잠들지 않는 도시를 검은색이 아닌 노란색 빨강색 등 원색계열로 표현된 배경이었다. 형광등 빛을 반사하는 노란색의 판넬은 정말로 밝다 못해 눈부신 야경처럼 눈을 찌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잠들지 않는 도심 속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도시인들의 환상과 욕망의 어우러짐을 표현한 듯 판넬 위는 수 백개의 직선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단순히 판넬 위를 가로지르는 직선이 아니었다. 판넬 위 그려진 직선이 아닌 손수 파서 만들어낸 깊게 패인 홈의 연장선들이었다. 이렇게 파이고 교차되는 직선들에서 자본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불가피한 ‘경쟁’이 떠오르고 그 경쟁의 이면에 현대인들이 받았을 상처가 깊게 패인 직선으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종횡의 열을 맞춰 이룬 듯한 직선들 사이사이 간간이 보이는 사선으로 뻗쳐나가는 몇 개의 직선들에게서 욕망의 어긋남 또는 일탈을 꿈꾸는 현대인이 보이면서 조금 전의 느낌에 또 한번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작가는 현대사회의 혼잡함과 상처만을 보여주진 않았다.
직선들로 인해 만들어진 셀 수 없이 많은 아주 자그마한 사각형들은 다양성을 상징하는 듯 했다. 종전의 사회, 즉 자본주의가 도입되기 이전의 사회에서는 경쟁보다는 협력이 주된 사회였다. 하나가 되어 ‘생존’ 자체가 그들의 목적이었다. 허나 산업혁명 등을 거치며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면서 실존적인 영역보다 그들을 표현해주는 본질적인 영역이 부각되어왔다. 여기에 자본주의 체제가 맞물려 경쟁사회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 이 경쟁이 수많은 병폐를 낳은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수많은 자기표현욕구가 비롯되어 현재의 다양성을 만들어주었다. 이것이 작가가 직선을 통해 생성된 다양한 모습의 사각형으로 전달하려하던 것이었나 싶다. 또 하나 그 다양성들 사이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만 바라보는 고정관념에 얽매어있지 않고 다양한 관점을 통합해 새로운 발전으로 이어지는 혁신, 결국 다양성에서 나온다. 이 수많은 사각형들 중 몇몇의 사각형들에 초록색, 흰색, 파랑색 등이 칠해져 있는 모습은 앞서 말한 혁신에 대한 희망, 경쟁사회의 부정적 요소가 아닌 긍정적 요소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이루는 주된 요소인 직선들에서 다가오는 총체적인 느낌을 말하고 끝을 맺어야겠다. 직선들을 가만히 응시해보니 우연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엔 다소 절제된 느낌이고, 하나하나 절차에 맞게 만들어냈다고 하기엔 꽤 자연스러웠다. 이처럼 보는 이에게 극단이 아닌 중용의 느낌을 받게 해 준다는 것, 이성과 감성의 경계를 넘나들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한 작가의 흔적 혹은 어지러운 현대사회 속에서도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으며 자신만의 중심을 지키자며 외치는 작가의 희망적 메시지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