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정, 절제와 충동. 양 극단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의 연속, 바로 우리의 삶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는 이런 고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완전무결한 감정, 오로지 자신의 충동을 따르는 그러한 사람이다. 그는 겉치레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조악하지만, 그 조악함 속에서도 기본적인 것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자유분방했다. 하지만 그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자신만의 질서는 놓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토록 방탕하여도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은 채 책을 읽으면서 조르바를 대면한 듯 유쾌함이 쉴 새 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유’, 책을 읽는 줄곧 떠나지 않은 단어이다. 자유란 무엇이기에 난 왜 조르바를 보며 자유로움을 느꼈을까?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에게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는 일정수준 이상 보장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산다고 느끼는 이는 정치, 경제의 성취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이에 반해 조르바는 사회적 기준에서 바라본다면 하잘 것 없지만 누구보다 자유롭고 호기롭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뚜렷한 가치관과 철학’의 유무가 아닐까 한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무엇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 외에는 누구도 답을 내려줄 수가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궁극적 목표인 철학을 공부하는 책 속의 화자 ‘나’는 정작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조르바는 지루하고 시시콜콜한 학문에 대한 이해 없이 몸소 경험하며 체득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던가? 진정한 진리는 글자가 아닌 명상과 깨달음 속에서, 진정한 철학 또한 책 속의 활자가 아닌 삶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딪친 삶의 끝에 자신이 보이고, 자신이 보인다면 진정한 자유가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조르바는 그의 삶 자체가 예술이고, 그 자체가 예술가이고, 그의 오감이 예술적 영감이다. 예술을 꿈꾸던 내게 경종을 울려주었다. 난 세상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늘 한 단계를 거쳐야했다. 쏟아지는 비와 불어오는 바람을 창문에 흘러내리는 빗줄기와 빗소리를 보고 들었을 뿐이었다. 창문 너머 흔들리는 나무와 바람소리를 보고 들었을 뿐이다. 조르바와 같이, 부닥치는 그대로를 흡수하지 못했다. 내가 느낀 ‘영감’이 아닌 책 속의 글과 캔버스 위의 그림을 통한 ‘배움’이었다. 내 것이 아니었다. 조르바의 예술적 충만과 늘 만족에 가득 찬 듯한 포만이 부러웠다. 이 생각을 물고 가다보니 조르바가 문학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의 인물로써 맞딱뜨렸을 때 어땠을까하고 상상해 보았다. 사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르고, 쉽게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기 쉬운 인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우리에게 조르바는 어쩌면 낯선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조르바의 시선 속에서는, 자신의 가치관과 철학도 없는 채 그저 관습에 순응하며 그것을 기준으로만 삼는 우리 모두가 조르바에겐 답답한 ‘이방인’일 것이다.
그렇다고 조르바의 삶이 유일한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허나 분명 옳은 방향 중의 하나라는 것은 확신한다. 인간군상에는 다채로운 모습이 존재한다. 이성을 중시하는 자, 감정을 중시하는 자, 이성과 감정의 적절한 배합을 이루는 자 등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이 이성을 중시할 경우에는 굳이 필요치 않는 감정들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가치관이 감정을 중시할 경우에는 굳이 필요치 않는 상황에서까지 이성을 앞세울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어떤 방향이든 자신의 색깔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 속의 조르바는 자신의 에너지의 대부분을 감정을 따르는데 소모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감정인지를 판단하는 지점에서는 분명히 어느 정도의 이성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또한 부분만을 고집하다보면 그에 대한 반작용, 부작용은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듯 어떤 요소 하나만으로는 큰 그림을 이룰 수 없다. 그렇기에 절제와 이성만을 고집하는 이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충동과 감정을 허락하고, 쾌락과 감정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이게는 적절한 이성을 권유해주고 싶다. 이렇게 중용의 미덕을 실천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미쳐도 된다는 조르바의 매력적인 대사가 귓가에 맴도는 밤이다.
“사람에게는 약간의 광기가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밧줄을 끊고 자유로워지지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