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도 수염이 나네.” 할매의 눈에는 아직도 내가 어린 아이 같나보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였네.” 예쁜 것을 좋아하는 할매는 염색한 나의 머리를 좋아한다. 단정치 못하다고 혼을 내지 않고, “아이고, 이쁘다” 하고 웃어준다.
“애인은 있나? 착한 각시 만나서 얼른 장가가야지.” 기운 없는 할매는 끝까지 할 말은 한다. “안갈끼다”. 폭 들어간 눈을 부릅뜨면서 “장가가야지! 얼른 애인 만나”라고 내 말에 다시금 덧붙인다. “알겠다. 알겠으. 장가갈게”. 라고 대답하며 노인이 더 이상 역정을 내지 못하게 노인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
“뭐시 이리 썩쭈구리하노. 아이가 아이가. 뵈기 싫다.” 할매랑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화면을 할매한테 보여줬더니 또 이런다. “뭐가? 할매 얼굴 좋은데? 할매 얼굴 좋다!”. 할매는 겸연쩍은 듯 “좋나? 얼굴 괜찮나?” 하면서 손으로 머리를 빗고 카메라를 바라봐준다.
“배수이는 보고 싶었으. 배수이는 우찌 사나 궁금하더라고. 이제 됐다. 봤은께 됐다.”
“할매! 내도 할매 보고 싶었다!!”
“머이라??”
“내도 할매 보고 싶었다고!”
“머이라고?!”
휴대폰에 큰 글자로 ‘보고 싶었다’고 적어서 보여주니 그제서야
“어. 어. 내도 우리 배수이 보고 싶었다. 본께 좋다. 잘 왔다.”
2. 코로나로 요양원 면회가 금지되고, 면회가 허용되어도 투명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우리 할매 손을 잡은 지도 2년이 넘어간다. 우리 할매 드라이브 시켜준 것도 2년이 넘어간다. 입으로는 싫다지만 얼굴은 활짝 웃는 할매 볼에 뽀뽀한 지도 2년이 넘어간다.
3. 할매는 나를 업어 키웠다. 유치원 입학, 초등학교 입학, 초등학교 졸업식을 다 찾아왔고, 군대 훈련소가 끝나고 상근이었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 우리 집 앞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4.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한 달에 한 번은 할매 집에 놀러갔다. 할배 없는 할매 외로울까봐, 놀러가서 할매 무릎 위에 누워있고, 할매 손을 잡고 있었다. 할매가 차려준 음식들은 일부러 다 먹었다. 그래야 할매가 웃었기 때문이다.
5. 지금 우리 할매는 90살이 넘었다. 얼굴과 팔과 손등에는 검버섯이 가득하다. 살갗은 층층이 주름졌고, 머리칼도 얇아졌다. 이젠 이도 몇 개 남지 않았다. 귀는 어두워진지 오래다. 온 몸이 가렵고 통증이 느껴진다고 한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고, 이젠 빨리 가고 싶단다. 하루하루가 무의미 하단다. 그래도 손자 한 번 찾아오면 그 날 하루만큼은 즐겁고 행복하단다.
6. 내일 당장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우리 할매가 난 아직도 귀엽다. 난 할매가 가도 귀여운 할매로 기억할 것 같다. 귀여운 우리 할매. 혹시나 내가 다시 뽀뽀할 기회가 오기 전에 떠난다면, 이 다음에 나도 여기 떠나고 하늘에서 할매 다시 만나면, 싫다고 말하면서 활짝 웃는 우리 할매 볼에 뽀뽀 진하게 한 번 해줘야겠다. 아니, 한 번 말고, 열 번 정도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