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 대하여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은 유희의 목적을 벗어났다. 내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넘어야할 산이 되버렸고, 운명의 장벽이 되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 벽을 마주한 나는 무던하게 벽 너머의 세상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다. 그것은 내 정신의 해방이며, 족쇄를 찬 영혼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난 길들여졌다. 어리석은 굴종이었으며 나 스스로 나를 과녁 삼아 통한의 화살을 쏘아댔다. 하지만 절망은 날 일으켰다. 모든 걸 비우고 다시 시작했다. 욕심은 가라앉았다.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내 길을 만들어 갔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었다. 바닥을 박차고 오른 이에게 새로운 주체성을 부여해주었고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다. 가장 치열하고 순수한 열정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들 모습이 그려진 젊은 날의 초상 속에는 한 번 더 절망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지 않을까? 누구보다 치열하게 절망하는 모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