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좀 켜도 돼?”
이른 새벽녘에 난 또 잠에서 깼다. 와인을 곁들인 한담에 자정이 넘어서 잠이 들었지만, 어김없이 난 또 눈이 떠졌다. 뒤척이다 결국 여전히 한밤중인 너에게 머리맡의 조명을 켜도 되는지 소리 낮춰 물었다. 나즈막히 ‘응’이라는 대답을 해준 너는 다시 잠들었고, 난 그 옆에서 엎드려 책을 펼쳤다. 그리고 늘어진 풍경처럼 아주 자그맣게 슈만의 ‘트로이 메라이’를 틀어놓았다. 새벽의 고요함과 조명, 꿈처럼 들리는 피아노, 좋아하는 책. 멈춘 듯 흐르는 시간에 잠시 나를 맡겼고, 시간은 잔잔한 구름인 양 내 주위를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엎드린 내 몸을 지탱하고 책을 쥐고 있던 왼팔과 내 등에 따뜻한 온기가 파고 들어왔다. 정말 스르르 들어왔다. 잠결이던 너는 네 얼굴을 내 왼팔에 파묻고 너의 오른손은 내 등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아주 살포시. 살금살금 조심스러운 고양이처럼. 때로 전혀 그렇지도 않은 풍경이나 상황 앞에 인간은 마음에 영문 모를 향수나 멜랑꼴리가 스멀스멀 올라올 때가 있다. 나에겐 그 순간이 그랬다. 몇시 몇분이었는지조차 모를 그 새벽에 점이 하나 찍힌 듯했다.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함 속에 꿈결에 다가온 네 손과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조차 않을 ‘점’을 내게 하나 찍어주었다.
너는 그 사실을 모른다. 너는 여전히 잠을 자고 있다. 나는 그런 너를 보고 있었다. 문득 어제의 대화가 떠올랐다. 장난삼아 물어본 “넌 내가 왜 좋아”라는 나의 물음에 넌 또 턱에 손을 괴고 진지한 듯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아. 늘 진지하고 무거운 얘기만 할 수는 없겠지만, 취향이나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못하는 사이라면 결국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 이야기만 하게 되더라고. 그런 것도 재미있을 때가 있는데 무의미하다 느껴질 때가 더 많아.”
멋들어진 대답이다. 너다운 대답이다. 바람 한 품조차 그냥 보내지 않는 너답다. 내가 본 너는 일상을 네 손으로 빚어나가는 아이다. 조심스레 만들어내는 말 한 조각부터 손수 건강한 식사를 꾸려나가고, 바람결을 좋아하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네 안에 주워 담는 아이다. 꾸민 데 없는 솔직함과 수수함이 있다.
넌 잠에서 깼다. 널 바라보는 날 바라본다. 넌 내게 ‘안아줘’라고 말한다. 나는 널 안아준다. 어쩌면 네가 나에게 ‘점’이 되어준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