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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도원 Jan 13. 2024

2023년 독서 어워드

이게 무슨 냄새야? 내 냄새였군!

 최근 독서 후 기록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낀 후 읽은 책들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독서록을 쓰고 있다. 그렇게 한편 한편 쌓인 서평들을 보며 자위하던 도중 독서 갤러리 개념글에 올라온 2023년 독서 결산들을 보게 되었다. "1년에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인데 나도 한번 써봐?"라는 고얀 욕심이 생겼지만 2023년 한 해 읽은 30권 내외의 책들을 다시 돌아보니 수많은 명작들을 읽을 수 있던 기회를 거르고 픽 했던 똥내음이 나는 책들이 나를 반겨줬다.


 2022년에는 그래도 좀 괜찮은 책들을 많이 읽어서 당당할 수 있었는데, 2024년에 2022년 독서 결산을 쓰는 양심 터진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2023년 독서결산을 하려고 하니 남는 것은 한해 독서에 대한 씁쓸한 참회와 자기반성뿐이었고, 남들 하는 것처럼 2023년 읽은 책을 쫙 펼쳐 보려고 하려고 하니 나조차 똥내음이 나서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존재했다. 어떻게든 똥을 카레로 포장하는 한이 있더라도, 비록 통찰력을 가진 애독가들에게 그 포장지가 갈기갈기 찢어져 똥내음을 들키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비겁한 편법을 쓰기로 했다. 모든 책을 다 공개해서 수치사당하는 게 아니라, 고르고 고른 몇몇 작품만 어워드 형식으로 결산을 하면 나름 있어 보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실은 숨겨지지 않았다. 나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이 글을 작성했지만 결국 진득이 지켜보면 보이는 진실의 편린이 나를 슬프게 했다. 하나 세상 모든 글이 예쁘고 반짝반짝하면 무엇이 가치가 있겠는가? 이런 하찮은 글이 세상의 예쁜 글들의 가치를 더욱 부각해 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위안을 안고 2023년 독서 어워드를 시작해 본다.


올해의 문학 (장편):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부끄럽지만 나는 책을 읽은 지 10년이 넘어간다. 그래도 일 년에 스무 권 이상은 꾸준히 읽고 있는데, 소설 좋아하고 SF 좋아한다는 놈이 이제야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니... 내다 버린 10년 동안 나는 대체 어떤 책을 읽은 걸까..? 그것은 나조차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재밌었잖아? 한잔해.


 각설하고 이 책은 유전자 레벨에서의 조작, 세뇌, 그리고 욕망과 말초적인 자극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책을 한해의 장편으로 삼은 이유는 1930년도에 나온 소설임에도 지금 거의 백 년이나 지난 현대 사회의 모습을 어느 정도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느껴진 충격. 그리고 자유의지가 거의 없어진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흠.. 그래도 저것도 행복한 것 아닌가?"라고 무의식에 생각해 버리는 나의 모습에 대한 공포감에 대한 충격 두 가지였다. 뭣보다 나이가 들고 삶에 찌들어서 그런가 이런 무한 츠쿠요미의 세계에 대한 반감이 예전만 하지 않다는 게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아아.. 우치하 마다라님 그립읍니다...

 

 더욱 무시무시한 사실은 우리는 이 책이 그리고 있는 사회로 점점 가속화돼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고, 이 책은 앞으로 재평가의 재평가를 받을 일만 남았다는 것이다. 몇 년 뒤의 우리는 침대에 누워 시각이 아닌 온 감각으로 느끼는 유튜브 쇼츠에 빠져서 현실의 답답함을 피하기 위한 소마 한 알을 먹고 있지 않을까?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책 내용 외적으로 또 고평가 하는 점은 본인과 책을 같이 읽는 친구도 비슷한 면에서 쇼킹함을 느꼈는데, 이 친구 또한 본인 못지않은 똥믈리에로서 뭐 어디 듣도 못한 책만 읽다가 이 책을 통해 고오전 소설이 가진 통찰력과 묵직함에서 감동을 느꼈고, 이를 계기로 우리는 앞으로 고전도 꾸준히 읽기로 했다는 점이다. 두 똥믈리에들을 구도해 준 헉슬리 선생님... 이 은혜 잊지 않겠읍니다.


올해의 문학 (단편): 배명훈 <임시 조종사>

영국의 군인이자 탐험가인 조지 말로리는 “왜 산을 오릅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곳에 산이 있으니까"

와 개머싯다.


그렇기에 나는 누군가 나에게 “왜 책을 읽으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오락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지. 씻팔


 본인에게 책은 그냥 오락이다. 애초에 책을 공격적으로 읽게 된 것도 고등학교 야자시간과, 대학교까지 왕복 4시간의 통학시간 동안 지하철이라는 무간지옥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으니... 그래서 나의 책을 선정하는 최우선 기준은 “라이트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느냐?”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손이 간 것이 ‘한국단편소설’이었다. 그렇게 많이 읽은 K-단편이지만 최근의 K-단편 소설에서는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세상에나... 재미를 위해 뽑은 책들인데 재미가 없다고? 뭘 읽어도 비슷한 느낌과 소재, 무슨 책을 읽어도 비슷한 색채의 등장인물. 심지어 작가 이름을 가리면 누구 작품인지도 알 수 없을 것 만 같은 그런 작품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 단편은 그런 나에게 아직 그래도 K-소설의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누군가 K-문학의 미래를 묻거든 나는 배명훈을 가리키리라. 판소리와 SF의 결합이라는 문학적인 새로운 시도, 판소리의 운율감을 활용해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내용전개, 그리고 단순히 문학적 시도 원툴에서 끝나는 게 아닌 결국 하나의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까지. K-단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한편을 쓰기 위한 배명훈 작가의 온몸 비틀기가 여실히 느껴져 마무리 부분에는 눈물을 흘리며 쌍따봉을 박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의 비문학: 세이노 <세이노의 가르침>

 과거 과외 알바를 하고 몇 년 동안 꾸준히 밀고 있는 다음의 피교육자 삼 법칙이 있다:

첫째 피교육자는 졸리다
둘째 피교육자는 하기 싫다
셋째 피교육자는 안 시키면 안 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게으르다. 따라서 가장 좋은 교육자는 피교육자가 게으름을 딛고 일어서 자신이 행해야 할 것을 행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난 아니었다 ^^. 나는 책 종류 중에서는 비문학, 조금 구체적으로 좋은 자기 계발서가 사람을 직접적으로 바꾸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앞서 말했듯이 본인은 재미없는 책은 읽지 않는다. 나는 하기 싫고, 심지어 억지로 시켜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문학 특히 자기 계발서는 읽은 책을 꼽아보면 정말 열손가락으로 다 셀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친구 소개로 읽었는데, 여러모로 호불호가 갈리는 책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뒤통수를 강렬하게 후려 쳐줘서 늘어져 있던 삶의 텐션을 다시 조일 수 있게 해 준 책이고, 뭣보다 이 책을 읽고 비문학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올해의 비문학 상을 수여한다. 그래도 세이노에서 시작해서 에리히 프롬까지 갔으면 충분히 의미가 있는 여정이 아니었는가?


 비문학의 가치란 머릿속에 어렴풋이 있던 직관들을 직접적인 글로써 정의해 주고 그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대해 좀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문학을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목적성을 봤을 때 비문학이 조금 더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2023은 그러한 비문학들 덕분에 이래저래 좋은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추구하고, 그 색깔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고착화된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새로운 즐거움이 나온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훌륭한 마중물이었다.


올해의 글귀

 2023년에 시작한 기특한 짓 중 하나는 책을 읽으며 나름 울림이 있었던 문구들을 필사한 것이었다. 사실 동네 독서모임 때문에 어쩌다 보니 하게 된 것이긴 한데, 그걸 여기서 쓰고 있다니... 역시 모든 일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그래도 나름 독서가인데, 이런 것도 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올 한 해 기록했던 글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였지? 생각해 보니 바로 아래의 글귀가 생각이 났다:

“소방관이 놓지 않았던 보경의 3%에는 실로 많은 것들이 담겨있었다. 보경은 언젠가, 한강 노을을 바라보며 바퀴를 열심히 굴리는 아이들이 멈추지 않고 달렸으면 좋겠다고 소방관에게 말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 천선란 <천 개의 파랑> 중

 아이러니하게도 사실 <천 개의 파랑>은 책을 덮었을 때는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문구 하나만큼은 정말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이 책에 실망한 이유도 책의 초반부에서 저 부분을 읽었을 때 느낀 기대감과 감상이 책의 중반부터는 많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대감을 만들어 주시고 그러시면 어떻게 해요 작가님 흑흑..


 이 부분은 읽는 사람에 따라 "여기서 우셔야 됩니다 ㅋㅋㅋ"가 느껴지는 K-신파를 노린 글귀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치킨은 알고 먹어도 치킨인 것처럼 원래 아는 맛이 제일 맛있는 법. 그리고 이 정도 신파는 좀 맞아줘도 된다. 애초에 내가 K-신파를 좋아하기도 하고... 아무튼 저 한 문단에서 느껴진 그 포텐, 그것을 기대하며 2024에도 천선란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어보지 않을까?


올해의 등장인물 (남성 부문): 복서 - 조지오웰 <동물농장>

 나는 <우마무스메>라는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다. 일본 경마 역사에서 굵직한 업적을 세운 말들을 소녀로 의인화한 육성 게임이다. 갑자기 <우마무스메> 이야기는 왜 하냐고? 2023년 독서 어워드 올해의 남성 등장 인물상 수상자는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등장하는 복서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 뭐요.


 잘못본거 아니다. 그 '말' 맞다 '馬'. 우마무스메를 너무 많이 해서 돌아버린 것일까? 올해의 등장'인'물 어워드의 수상 대상이 사람이 아니고 '말'이라고? 이에 대해 구차한 변명을 하자면 내가 2023년에 읽은 책의 6할은 K-문학이오 3할은 비문학이었다. 최근 k문학에서는 남성 등장인물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고. 비문학은 애초에 대상에서 제외가 된다. 고로 읽은 책 중에 남성 등장인물의 수가 극도로 적었고, 그 제한된 풀에서 기억에 남는 남성.. 조금 더 편견을 버려서 수컷까지 생각해 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아니 동물은 ‘복서’였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의 주인공인 한유진도 후보에 올랐으나. 돌이켜보면 올해는 복서였다.


 나도 멋있는 남성 인물 뽑고 싶었다고... 나도 케이건 드라카 올해의 남성 등장인물로 뽑고 싶다고... 근데 안 나온다고...


 아무튼 능력도 있고 상황이 뭔가 껄끄럽게 돌아가는 것을 알면서도 진짜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문제를 일축하다가 결국 최후를 맞는 인물.. 아니 축생.. 나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그리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많이 하고 살지는 않는데 그것을 돌아볼 수 있었다는 개머싯는 말로 이 문단을 마무리한다.


올해의 등장인물 (여성 부문): 김은경 - 배명훈 <신의 궤도 및 다수작>


“젠장 또 김은경이야. 또 김은경을 보고 말았어...”


 배명훈 유니버스의 꿀잼 보장 수표... 작가와 빠들을 미치게 하는 그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그녀... 그래서 잊을 수 없는 그녀... 사실 막 그렇게 그립지는 않습니다 goat...


 독서 인생의 본격적인 시작을 돌이켜보면 김은경 주연인 배명훈의 <신의 궤도>였다. 지금까지도 배명훈 작가의 작품은 꾸준히 읽고 있고 그때마다 김은경을 만나고 있다. 가장 친한 친구랑도 이제야 15년 지기인데, 김은경이랑 지금 12년째 만나고 있으니 이젠 단순히 소설 등장인물 이상의 친근감이 느껴진다. 약간 오버하면 나중에 김은경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나게 되면 초면에 "어? 김은경?" 할지도 모른다.


 최근 수많은 여성 서사 위주의 K소설을 읽었지만, 김은경만큼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인물이 있었는가? 없었다. 앞서 남성 부문 등장인물 어워드를 할 때는 애초에 풀이 좁아서 뽑을 인원수가 적었다는 게 문제였다면, 여성 부문에서는 다 그놈이 그 놈이어서 뽑을 인물이 없었다. 최근에는 배명훈 작가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더 깊어져서 여러 작품에 나왔던 수많은 김은경들이 이어져 하나의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들로 느껴지는데, 개인적인 감상으로 배명훈 작품 속 수많은 김은경이라는 인물들의 본질은 꺼지지 않는 생명력인 것 같다. 김은경이라는 인물에 애정이 가는 이유도 내가 워낙에 생명력 넘치는 인물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은데, 고로 별 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김은경과의 만남은 계속될 것 같다. 다음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goat시여...


올해의 작가상: 정보라

 앞에서 일언반구도 없던 작가가 왜 뜬금없이 올해의 작가상인가? 이 어워드는 올해 시작한 무근본 어워드이고, 아무리 나의 독서 또한 무근본이었어도 내가 읽은 모든 것을 휴지통으로 처넣는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각 부문에서 나름의 철학을 담으며 최대한 다양한 작품, 작가를 언급하고 싶었다. 올해의 작가상의 수상 기준은 "오직 한 작품의 파워만으로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만드는 작가"였다.


 작품 하나로 매력이 느껴지는 작가를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작가를 한 명 뚫어놓으면 점심시간에 먹을 거 없을 때 제육 혹은 국밥을 먹는 것 마냥 든든하게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매번 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집으면서 죽을 쑤는 것이고... 아무튼 돌아보면 2023은 정보라 작가였다. 단편집 <씨앗>으로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해당 작품에서는 '정도경'이라는 필명을 사용해서 정보를 찾는데 애 좀 먹었다.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각 이야기가 굉장히 이미지화가 잘 되는 느낌이었다. 자고로 소설의 몰입감은 "얼마나 상황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냐?"라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이 굉장히 충실해서 그냥 무념무상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책은 재밌으면 장땡이다. 내년에는 아마 부커상 후보작이었던 <저주토끼>를 읽어보지 않을까?


BOTY (Book Of The Year)

 왜 앞에서 장편소설, 단편소설, 비문학 다 꼽아놓고 BOTY는 따로 선정하지? 미친놈인가? 아니다. 위에서 꼽은 책들은 각 분야별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 (e.g., 문학이면 재미, 비문학이면 지식 습득 혹은 동기부여)를 극한으로 만족한 책이라면, BOTY의 선정 기준은 내 배경지식, 현생, 책 재미, 인상 등등 해당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잡탕밥으로 끓였을 때 그 인상이 가장 강렬했던 것들이다. 그래. 솔직히 억지 맞고, 추하지만 사실은 여기까지 오니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굳이 이 목차를 만든 게 맞다.


잡설이 길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2023년 한 해를 돌아봤을 때 그냥 할 말이 많은 책이 BOTY라는 점이다.


아차상: 밀란 쿤데라 - <농담>

 "왜 쿤데라가 아차상인가요? 사실 당신이 고른 책들이 문제가 아닌 당신 취향이 문제인 게 아닐까요?"


 어디서 본 글인데 아름다운 것들은 이 어두운 세상에 존재하기엔 너무나도 빛이 나기에, 사람은 살면서 추억, 꿈, 희망과 같이 소중한 것의 일부분을 떼어내 가슴속에 묻는다고 한다. 나에겐 쿤데라가 그렇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굉장히 재밌게 읽었고, 그 여운을 안고 <농담>을 집었다. 다행인 점인 이 책도 읽을 당시를 회상하면 정말 재밌게 읽었고, 뭔가 느끼는 바도 많았다는 점이고. 비극적인 점은 이때는 내가 그렇게 열심히 독서록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게 <농담>은 "그 책 참 좋았지..."라는 감상만을 남기고 내 마음속의 무덤에 묻혀버렸고, 그곳에서 다시는 꺼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 비극적 이게도 나는 누군가가 밀란 쿤데라에 대한 화두를 꺼낸다면 "WA! 밀란 쿤데라 아시는구나! 저는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읽었습니다. 근데 내용은 몰?루"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신은 이 글의 서두를 기억 하는가? "최근 독서 후 기록의 중요성을 여실히 느낀 후 읽은 책들에 대해 짤막하게나마 독서록을 쓰고 있다." 그렇다... 내가 독서록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 이유... 그리고 그게 이어져 2023 독서 어워드를 하고 있는 그 이유... 그 시작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농담을 고작 이렇게 소비한다고?". 인정한다.


근데 기억이 안 나는데 어쩌라고...


3위: 정유정 - <종의 기원>

 앞서 올해의 작가상에서 언급했 듯, 나 같은 순수 재미충에게 있어서는 어떤 책을 집어도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믿을맨 작가의 존재는 남초 회사 앞의 국밥, 제육, 그리고 돈가스 집의 존재와 같다. 집으면 무난하게 보통 이상은 가는 든든한 존재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정유정 작가가 그런 작가 중 하나였다. 주로 인간 악의를 소재로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 어떻게 보면 매번 비슷한 플롯에 매너리즘이 느껴질 법했는데. 브루스 리 왈 "나는 천 가지 발차기를 한 사람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 한 사람은 두렵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책은 사이코패스를 소재로 한 소설의 극한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가장 놀란 부분은 이전까지는 사이코패스 등장인물들에 대해서 "야 이 새끼 순 나쁜 새끼네!!" 하면서 이야기를 소화하던 내가 사이코패스인 등장인물에 감정적으로 이입을 하고 "혹시나 착한 인물인 거 아니야?"라는 감상까지 느꼈다는 점이다.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결국 심연도 자신을 돌아본다는 니체의 말마따나, 이 책을 포함한 악의 3부작을 쓰면서 끊임없이 벼려온 정유정의 칼날이 나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꾸준히 작품을 찾아 읽던 한 작가의 고점을 느끼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지금까지 읽었던 정유정 작가의 베스트였기에. 여러모로 느낀 바가 많았다.

   

2위: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페이커가 읽은 바로 그 책! 갑자기 현대 베스트셀러가 BOTY  2위를 하고 있다니... 심지어 이 책 읽고 난 이후에는 "흠 그 정돈가...?" 하는 감상평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근데 이게 왜 2위냐고? 결국 한 해를 돌아보니 2023의 내 집중력은 도둑맞은 게 맞았고, 지인들과의 대화에서도 이 책에서 논의하는 내용이 꽤나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도 본인 포함 많은 사람들이 "와 유튜브 쇼츠때문에 인생 망했다 ㅋㅋㅋ"와 같은 푸념을 굉장히 흔히 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이슈가 되고 있는데 결국 올 한 해는 나 포함 모두가 이러한 <도둑맞은 집중력>에 대한 인식을 했음을 느낀다.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앞서 말한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나니 이 책의 내용이 조금 더 와닿았던 것 같다.

 

 결국 이 책이 나의 인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됐는가? 그거에 대해선 "No"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2023년을 돌아봤을 때, 나와 내 주변인들의 삶에서 이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문제를 빼놓고 말할 수 없었기에 이 책을 2023년 BOTY 2위로 선정한다. 비문학을 평소엔 읽지도 않는 내가 이런 책을 고르게 된 것은 결국 대상혁 덕분이다. 역시 상혁이 형이야... 책 보는 눈까지 완벽하다니... 숭배를 멈출 수가 없잖아.


1위: 배명훈 - <미래과거시제>

 수많은 고오전 명작을 거르고 BOTY 1위를 수상한 명예의 책이 어떻게 배명훈? 하는 반응이 올까 봐 벌써부터 두렵지만. 어차피 내 맘대로 쓰는 2023 어워드인데 알빠노? 어차피 이 글은 이미 망해버렸다.


 2023년 한 해의 독서기록을 돌아보면 평소 안 읽던 비문학도 깔짝대보고, 책에서 무언가를 얻어보겠다고 기록도 해봤지만, 30대가 되어서 그런가? 연어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 2023의 마무리는 결국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어떤 맛이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고, 그 마지막은 배명훈의 단편집 <미래과거시제>였다.


 앞서 올해의 단편이었던 <임시 조종사>가 포함된 단편집으로, 본인은 이제 배명훈 작가 작품을 12년째 읽고 있다. 이 책은 최근에는 솔직히 별 맛없이 그저 관성으로 읽었던 배명훈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다시금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1점, 배명훈 한 명을 떠나서 K-소설 자체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해 줬다는 점에서 2점, 마지막으로 최근 독서를 할 때 잊고 있었던 "나는 이런 걸 좋아했지"라는 느낌을 다시 상기시켜줬다는 점에서 3점을 주며. 이견 없이 2023년의 BOTY로 꼽았다. 결국 내가 책을 읽은 이유는 순수재미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내가 수많은 똥내음이 나는 책을 읽으며 도전하는 이유도 결국 나의 취향을 찾는 여행에서 이런 한방을 찾기 위함이었음을 다시금 느낀다.


 살짝 오버하면, 예전에 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주워 읽었을 때의 기쁨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느꼈고, 뭣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빵 터진 게 얼마만이었는지... 그런 감정을 생각해 보면 2024년에도 꾸준히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고. 그를 가능케 해 준 책. 그게 바로 이 책이었다.


마치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고 글을 마치는 지금도 똥내가 풀풀 나는 한 해의 독서였지만, 결국 내가 읽은 책들을 최대한 겹침 없이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처음에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동기를 이겨먹은 것 같다. 순전히 재미로 쓴 글이라 쓰다 보니 재미가 붙어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 책도 많은데, 그렇게 하다가는 하루 종일 이 글만 붙잡고 있을 것 같아서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그래,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실 이렇게 독서 결산을 해본 적은 없는데, 실제로 돌아보니 내 독서가 굉장히 편향되어 있다는 걸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고... 그걸 알면서도 딱히 크게 바뀔 맘은 없지만, 그래도 내년 독서는 이 어워드를 고려해서라도 조금 더 고급진 한정식 같은 책들을 많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특히나 유난히 올해 독서는 킬링 타임용 책이 많았는데, 매년 그래도 하나 즈음은 읽었던 초장편도 없었고, 심심하면 읽어댔던 추리소설류도 하나도 없었다. 올해가 사실 좀 유난히 유별난 해인데, 내년 2024 독서결산은 조금 더 다채롭기를 기원한다.


 여기까지 읽어보니 이게 독서어워드인지 변기통인지 알 수 없는 똥내나는 글을 읽어준 분들 께 감사를 드리며, 독서도 일도 사람 관계도 화이팅 해보자는 덕담으로 조금 늦은 2023년 독서 어워드를 마치고자 한다.우리인생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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