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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Apr 08. 2024

하늘의 별들이 땅에 내려온다면

별이 떨어지면 안 되고 내려와야 하는 이유

작년에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충격을 받았던 것 중의 하나가 아이들의 세상에서 노래가 사라졌다는 거였다. 노래를 알지도 못하고, 부르지도 않고, 배우기도 싫어했다. 학교에서도 노래는 별로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했다. 노래는커녕 옆 사람과 대화도 나누지 못하게 했던 코로나 시대의 영향도 컸으리라.


올해 3학년 아이들과는 노래를 배우고 부르는 시간을 꼭 갖고 싶었다. 내가 노래를 잘할 수 있으면 직접 노래를 가르쳐 주련만. 안타깝게도 내가 노래를 부르면, 부르는 나도 듣는 아이들도 괴롭고, 노래가 점점 더 싫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톤차임'을 연주하며 자연스레 노래를 불러 보기로 했다. 복지관에서 음악치료를 했던 이모 수녀님이 물려주신 톤차임을 이렇게 잘 활용하게 될 줄이야.(이모님 고맙습니다!)


첫 시간에는 가벼운 동요로 맛보기를 했더랬다. 아이들이 처음 보는 악기라 신기한 모양이다. 일단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 그런데 하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더니, 수업 중에 삭아버린 해머 부분이 산산조각이 나는 참사가 벌어지고 만다. 휴지로 둘둘 말아 수업을 마쳤다. 악기를 만들었던 회사는 아예 문을 닫았다는데, 알음알음 찾아본 서울에 있는 악기사로 가져가 A/S를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시간에는 본격적으로 '청요' 배우기에 도전한다. '내 맘에도 별이 내려'라는 고운 노래다. 원래 노랫말은 이러하다.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내려와 산마다 들마다 꽃이 되어 피어나네 

민들레 진달래 개나리 꽃마리 제비꽃 나팔꽃 별을 품고 피어나네

그렇게 내 마음속에도 별이 내려와서 곱게 피어난다면

꽃처럼 고운 빛을 내며 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의 꿈들이 이 땅에 내려와 내 마음 가득히 꽃이 되어 피어나요


아이들은 이미 여러 번 들었던 노래다. 먼저 원고지에 노랫말을 예쁘게 적어보라고 했다. 

"맨 앞에 띄고 써요?"

"줄 바꿈은 어떻게 해요?"

처음 원고지를 대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꽤 진지하다. 

"오늘의 글쓰기는 노랫말을 바꾸는 것은 아니야. 이 노래를 만든 선생님은 꽃들을 보면서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서 피어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나 봐.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내려온다면 어떤 모습일까? 오늘은 그걸 주제로 글을 써보자."

꽃이 되어 핀다는 것은 원래 노랫말이니까 그것은 빼고 마음껏 상상해서 써보라고 했더니.

하늘에 별들이 땅에 내려온다면 방긋방긋 귀여운 아기가 될 것 같다. 왜냐면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마치 똘망똘망한 아기의 눈을 닮은 것 같다. 또 부모님에게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별이 모두 아기로 변한다면 세상은 더 많은 생명이 태어날 것이고, 전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웃고 함께 할 것이고, 웃음이 가득할 것 같다. 또 전보다 많은 것을 해낼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커서 아기를 낳고 더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많으면 싸움도 많아지고 욕심, 질투, 탐욕도 많아지는 세상이 될 것 같다. [예설]

어릴 때 생일을 맞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원래 하늘에 살던 천사였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면서 누가 엄마가 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너를 가장 잘 돌봐줄 사람 뱃속으로 쏙 들어간 거지."라는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예설이는 그 이야기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별이 아기로 태어난다면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 같단다. 그런데 사람이 많으면 싸움이 많아지고, 욕심 사나운 곳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벌써 안 건지.

하늘에 별들이 땅에 내려온다면 금처럼 반짝반짝거릴 것 같다. 밤에 하늘을 볼 때는 별이 동그랗게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진짜 별 모양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멀리서 볼 때는 별이랑 멀리 있으니까 덜 반짝할 것 같다. 가까이에서 별을 보면 눈을 못 뜰 정도일 것 같다. 그리고 불가사리를 아쿠아리움에서 보았는데 불가사리에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밤에 볼 수 있는 별이 생각났다. 왜냐하면 모양이 같아서 그랬다. 집에 별 모양 인형이 있었는데 잃어버려서 속상했다. [세빈]

세빈이의 글에서는 세빈이 생각이 지나가는 길이 보인다. 반짝반짝해서 눈을 못 뜰 것 같은 별에서 불가사리를 연상하고, 다시 잃어버린 별 인형까지 소환한다. 다른 글에서도 느낀 바, 세빈이는 주제가 주어지면 '잘 쓰고 싶다'는 마음 없이 자신에게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잘 표현한다. 세빈이가 생각을 더 넓고 깊게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주자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별이 내려온다면 별에 날개가 달려서 날아올 것 같습니다. 별은 요정이 되어 허름한 사막에 비를 내려서 멋진 꽃밭으로 만들고, 지저분한 폐허도 예쁘게 꾸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마법을 부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어여쁜 음악을 만들며 뭔가 허름한 세상을 색다르게 꾸며줄 것 같습니다. 무지개 음료를 만들고 별가루를 뿌려서 달달하게 만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잃은 사람에게 자신의 행복을 나눠줄 것 같습니다. 또 계곡에 마법 가루를 뿌려 은하수 빛 계곡을 만들 것 같습니다. [주연]

아이들의 글, 특히 여자 아이들의 글에서는 요정이 자주 등장한다. 신기한 마법을 부리는 요정, 아름다운 세상을 꾸미는 천사 등. 주연이 말대로 '허름한' 세상과 '지저분한 폐허'가 달달하게 되는 날이 오면 참 좋겠다. 굳이 날개 달린 별이 내려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늘에 별들이 땅으로 내려온다면 빛이 나는 아이가 아기 천사였다가 별을 타고 내려와서 남다른 아이들이 다 별을 타고 땅으로 내려와 특별한 세상을 만들고 그 별을 나눠주고 또 나눠줘서 힘든 마음도 욕심이 들어도 화가 나도 짜증 나도 모두 그 마음을 없애고 행복으로 채워준다. 그래서 행복한 지구가 되도록 만들려면 쓰레기를 분리수거 잘하고 함부로 버리지 않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나 킥보드 등 전자가 안 나오는 물건을 이용해 보면 어느새 깨끗하고 평화로운 지구가 될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더 좋은 별이 내려올 거다. [수인]

수인이의 첫 문장은 세 줄 가까이 길어졌다. 별을 타고 땅에 내려온 아기 천사들이 행복으로 채워주는 세상을 그려보다가, 그다음 문장에서 빵 터졌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풍선이 터진 느낌이랄까, 상상과 마법의 세상에서 놀다가 꿈을 깨고 현타가 온 장면이랄까. 갑자기 깨끗하고 평화로운 지구를 살리기 위한 캠페인으로 바뀌고 말았지만, 결론은 다시 좋은 별이 내려오는 걸로 훈훈하게 마무리.


여자 아이들의 글에서는 그래도 하늘에서 별이 '내려왔다.' 그런데 남자아이들 세 명은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쓸지 모르겠어요."

"하늘에서 별이 내려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별이 떨어졌다고 생각해도 돼. 길 가다가 별이 뚝 떨어지면 어떤 세상이 될까?"

연필을 잡고서도 킥킥대며 못 쓰겠다던 녀석들이 "떨어졌다고 해도 된다고요?"라고 반색을 하더니, SF 우주영화를 찍어댄다. 세 녀석은 줄곧 떠들며 글을 쓰는 바람에 내용도 얼추 비슷한데, 여자 아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장르다. 감성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이고, 문학적이라기보다는 과학적이며, 낙관적이라기보다는 비관적이다. 

지구에 별이 떨어진다면 구덩이가 아주 많이 파이고, 과학자들이 조사하고, 건물이 파괴되고, 사람이 다치고, 반짝일 것 같다. 그러고 도시가 밝아지고, 맨홀에서 물이 나오고, 싱크홀이 생기고, 강이 넘칠 것 같다. 또 화재가 나고, 재산 피해가 있고, 가족을 잃고, 감전되고, 내 2층 침대가 부서지고, 지구가 파괴되어서 어쩌면 화성에서 살게 될 것 같다. [우현]

우현이에게는 2층 침대가 가장 소중한 것임을 알겠다. 

지구에 별이 내려온다면 땅이 파이고 집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별에 맞아 조금씩 줄어들 것 같다. 싱크홀이 생길 것 같다. 여름에 별이 떨어지면 에어컨을 켜고 싶은데 별이 떨어져서 전깃줄이 끊어지고 지나가던 사람이 전기에 감전되고 정전될 것 같다. 여름에 비가 와서 홍수가 나고 수영장이 부서지고 콘크리트가 쏟아져서 마트가 부서지고 병원이 부서져서 상처를 치료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게 한 마디로 지구가 파괴될 것 같다. [수현]

수현이는 여름에 에어컨을 켜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가장 끔찍한지도.

하늘에 별들의 땅으로 떨어진다면.
땅에 별이 박혔는데 별이라 하얀색이어서 놀라고 그게 돌이 되어서 별을 맞은 사람들은 사망 또는 다치고 그 돌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땅이 뚫려서 엄청 깊은 구멍이 생기고 또 비가 와서 뚫린 구멍에 물이 차고 그것 때문에 홍수가 나고 집이 떠내려가고 불도 나고 의사도 다쳐서 치료도 못하고 그래서 곤충, 동물, 벌레가 다 죽고 지구도 파괴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우주복을 입고 우주에서 살고 그래서 우주에 별이 없어져서 별을 볼 수 없고 그러다가 새로운 행성을 찾았는데 먹을 게 없어서 모두가 죽었다. [승연]

모두가 죽었다는 승연이의 글은 너무 슬픈 새드 엔딩.


짧은 시간에 쓴 한 편의 글이지만, 아이들 각각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던 날이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남자와 여자 아이의 성향이 얼마나 다른지도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기왕에 별이 내려와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지구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땅으로 내려오는 게 더 낫기는 하겠다. 원래 청요 작가이신 김희동 선생님 생각처럼 꽃으로 피어나면 가장 좋겠고.

별을 품고 피어난 꽃들! 밖에 나가면 눈호강을 실컷 하게 되는 봄날.

*대문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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