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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Jun 22. 2024

"무슨 제자가 이래? 엉엉엉!"

연중 제12주일 / 마르코 복음 4,35-41

"아닌 건, 아닌 거야!"

제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단호한 훈육이 필요할 때 자주 했던 말입니다. 자신과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었지만 제 기준에서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해올 때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어요. 그러면 아이들은 울면서 제게 항변을 하곤 했습니다. 분에 못 이기면 발버둥을 치기도 하면서요.

"무슨 엄마가 이래? 엉엉엉!"


그렇게 울면 제가 하는 답도 늘 같았습니다.

"엄마니까 그러지. 해달라는 거 다해주는 건 엄마가 아니야, 이모야. 그럼 엄마가 뭐든지 들어줄 테니까, 이제부터 엄마 말고 이모라고 부를래? 아니면, 저기 큰 마트에 가서 다른 엄마로 바꿔다 줄까?"

다소 협박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이 말에 아이들은 백기를 들었지요.

"아니야, 엄마 안 바꿀 거야. 이모 아니야." 하면서요.

저는 아이들이 저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등 아이들의 일상을 쉼 없이 돌보는 육아가 하나도 힘들지 않았나 봅니다. 우는 것도 귀엽고, 자는 것은 더 귀엽고, 품을 파고드는 것은 더더더 귀엽기만 했어요. 아이들이 올곧게 저를 의지하던, 어린 아기였던 그 시절은 제 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저만큼 그 시절을 행복해했는지는 백퍼 자신할 수 없지만요.  


아이들이 태어나 삼 년 동안 평생 할 효도는 다 하는 거라는 말도 있지요.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이들이 자라 점점 제 손길을 덜 필요로 하게 되니 외로운 날들이 생기더라고요. 여친 남친은 챙기면서 어버이날은 잊을 때, 귀가가 늦어 걱정하고 있는데 연락이 없을 때, 몸이 아파 누워 있어도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자기 방으로 쑥 들어가 버릴 때요. 아이가 품을 떠나가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은 쉬 사라지지 않더이다.


성서는 살아 있는 말씀이어서 읽을 때마다 다른 영감을 줍니다.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오늘 복음도 그렇습니다. 여태까지는 제자들의 믿음 없는 행동으로만 묵상해 왔는데요, 올해는 조금 다르게 읽히네요.


복음에 나타난 상황은 이러합니다. 피곤에 지친 예수님은 찬 바닥에 누워 잠이 듭니다. 풍랑이 몰아치는데 깨지 않을 정도면 얼마나 고되셨는지 짐작할 것 같습니다. 물이 조금씩 차는 걸 보던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다가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러고 냅다 한다는 말이,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입니다.

세상에나!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도 아닌데 이건 좀 너무하네요.


예를 들어 이런 거죠,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온 아빠가 지쳐 잠이 들었는데 집에 불이 났다고 칩시다. 식구들은 불길이 번져오는 걸 보며 어찌할 줄 몰라 우왕좌왕합니다. 피곤한 아빠는 세상모르고 자는데, 아이들이 아빠를 흔들어 깨우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아빠,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도 안 되는 거예요?"


제자들은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라는 말 대신에, "예수님, 일어나세요! 배에 물이 가득 찼어요. 빨리 일어나셔야 해요!"라고 하는 게 정상적인 관계인 거죠. "아빠, 불났어요! 얼른 피해야 해요!" 하며 아빠를 깨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요.


자기들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발언을 들은 예수님은 마음이 참 외로우셨겠다, 씁쓸하셨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대인배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시죠. 오히려 바람을 꾸짖고 잠잠하게 하십니다. 제자들로 인해 서운하셨지만 제자들을 위험에 빠지게 두지는 않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어떤 일을 해온 어떤 사람인지, 제자들을 위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사람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촉구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는 말씀 안에는 "내가 너희를 지켜주리라는 것을 잊었던 거야? 너희가 물에 빠져 죽도록 그냥 두었을 것 같은 거야? 아직도 날 못 믿는 거야?"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을 거예요.


엄마들은 아시겠지만 가끔은 엄마도 외롭습니다.

"무슨 엄마가 이래?" 하고 우는 아이처럼, 엄마도 "무슨 아들이, 무슨 딸내미가 이래?" 하며 울고 싶을 때가 있다고요. 엄마뿐인가요. 아이들과 지내는 교사들도 가끔은 아이들의 위로를 받고 싶답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라고 쓴 정호승 시인의 시구처럼, 예수님도 가끔은 위로를 받고 싶으실지 몰라요. 하느님이시니까 아이처럼 발버둥을 치지는 않으시겠지만, "무슨 제자들이 이래? 무슨 신앙인이 이래?" 하면서 엉엉 울고 계실지도요.


풍랑을 가라앉히시다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Die Stillung des Sturms
Am Abend desselben Tages sagte er zu ihnen: Laßt uns hinüberfahren. Und sie ließen das Volk fortgehen und nahmen ihn mit, wie er im Boot war, und es waren noch andere Boote bei ihm. Und es erhob sich ein großer Wirbelwind, und die Wellen schlugen in das Boot, so daß das Boot schon voll lief. Er aber lag hinten im Boot und schlief auf einem Kissen. Da weckten sie ihn auf und sagten zu ihm: Meister, fragst du nichts danach, herrschte den Wind an und sprach zu dem Meer: Schweig und verstumme! Und der Wind legte sich, und es entstand eine große Stille. Und er sagte zu ihnen: Was seid ihr so ängstlich? Habt ihr noch immer keinen Glauben? Sie aber fürchteten sich sehr und sagten zueinander: Wer ist der? Selbst Wind und Meer sind ihm gehor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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