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덕분은 아닐걸?
사람을 '그 사람'으로만 대한다는 어려운 일을
양갈래 머리를 쫑쫑 땋아내리고 플레어 치맛자락 펄럭펄럭 날리며 다니던 여고시절, 나름 인싸였던 내게는 좋은 친구들이 꽤 많았다. 그 친구들은 거주지, 등하교 동선에 따라서 그룹이 지어지기도 했고, 흥미와 취미에 따라 몰려다니기도 했다. 1학년 때는 주로 가톨릭 동아리 성격이었던 레지오 마리애를 함께 했던 친구들과 어울렸다. 종로 한복판에 있던 학교가 강남에 땅을 사서 이사를 간 2학년 때는 셔틀버스(당시에는 전세버스라고 했다)를 함께 타고 다닌 친구와 더 가깝게 지냈다.
그 중 한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의 유쾌함과 유머러스함을 좋아했다. 이름에 '효도 효'자가 들어간 그 친구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좌중을 웃기기도 했고, 성격이 모나지 않아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던데다 집도 같은 방향이었다. 창동인지 번동인지 북쪽 차고지에서 출발한 등교 버스에는 그 친구가 수유리에서 먼저 탑승을 했고, 그 다음 정류장에서 내가 탔다.
나는 문과, 그 친구는 이과여서 본격적인 입시 준비를 하던 3학년 때부터는 관계가 조금 소원해졌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학교 다른 학과로 진학한 우리는 졸업 후 거의 만나지 못하다가 그후에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치기도 했으나, 내가 지방으로 내려오던 20여년 전부터는 전혀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그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됐다. 제주에 사는 친구가 육지로 올라와 공항에서 만나 밥을 먹고 헤어지는 정도로 짧은 만남이었지만, 긴 세월을 중간에 툭 자르기라도 한듯 우리는 여고시절처럼 웃고 떠들 수 있었다.
수십 년 살아온 인생을 서너 시간 안에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한 학기 수업한 시험 범위를 한 장의 예상문제로 요약하는 것보다 어렵다. 한 장으로 줄인 내용이 책 한 권 범위 안에서 가장 핵심적 내용인지 자신할 수 없는 것처럼 친구가 했던 그 일이 친구의 삶 전체를 옳게 보는 건지도 자신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내 삶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기를 원치 않듯, 나 역시 내 친구의 삶을 내 잣대로 판단하려는 것도 아니다.
친구가 한 일은 이러하다. 유책 사유가 그 친구에게 있지 않은 결혼 생활을 친구는 오래 전에 정리했는데, 배우자가 그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배우자는 집을 나가 별거 상태로 들어갔으나, 친구는 두 아이를 건사하며 늙고 병든 시아버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다. 서류 정리가 되고 난 뒤 친구는 재혼을 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나는 처음에 친구가 바보가 아닌가, 생각했다. 부부가 살다가 갈라지는 데는 아무리 가까운 친구에게도 다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을 수 있고, 부부의 문제는 양쪽 이야기가 첨예하게 다를 수 있다. 설령 유책 사유가 친구에게 있었다고 해도, 별거를 택하고 집을 나간 남편이 몰라라 하는 병든 시아버지의 오줌 똥 수발을 들다니.
시부모든 친정 부모든, 늙으신 부모를 모시는 내 친구 같은 효자 효부는 종종 보아왔다. 집에 모시지 않는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부모를 챙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내 친구에게서 정말 배우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시아버지가 죽이고 싶게 미운 남편의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시아버지와 남편을 완전히 다른 인격체로 보고 대했다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그저 한 사람의 늙고 병든 노인으로만, 그간 살면서 약간의 정이 든 사람으로만 대했다는 것이다.
어린이집 교사를 하면서 부모가 너무 힘들게 하거나 진상을 부리면 그 아이를 부모와 연결시키지 않고 보기가 어려웠다. 반대로 아이한테 큰 정이 가지 않다가도 부모가 진심으로 교사를 믿어 주면 아이와의 관계에도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쳤다. '교사도 사람이니까'라는 말로 그런 감정의 흐름이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하려고도 했다.
한 사람을 그와 가까운, 그와 연결된 다른 사람을 모두 배제하고 오롯이 그 사람으로만 대하는 것, 순수한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 나처럼 마음속 계산이 복잡한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내 이름에는 없는 글자, 그 친구 이름에 들어간 '효(孝)'자 덕분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