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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Aug 03. 2024

그 빵을 제게도 주시지요

연중 제18주일 / 요한복음 6,24-35

'안쓰럽다'

불쌍하다, 딱하다, 안됐다, 가엾다와 같은 단어들과 맞바꿔 쓰기에는 약간 다른 뉘앙스가 담긴 형용사입니다. 어학사전에는 그렇게 나와 있지 않지만, 왠지 이 단어는 상대방과 눈맞춤을 한 상태에서만 쓰일 수 있는 낱말 같아요. 누구에게 전해 듣거나, 어떤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사람이 아니라, 내 눈앞에 있는 사람, 내가 눈을 맞추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쓸 수 있는 공감 코드가 담겨 있다고 할까요.


책이나 뉴스를 보면 가난하고 병든 사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불의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사정이  딱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지만, 안쓰러운 마음과는 약간 결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직접 마주 대하고 으면 '안쓰럽다'는 마음과 함께 저에게도 상대의 아픔이 찌르르 전해지곤 해요. 일방적으로 가엾고 불쌍하게 느끼는 것이 아닌, 안쓰러운 마음으로 공감하게 되면 그 사람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지도 못합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가진 재산, 내가 아는 진실, 내가 경험한 지혜도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어지죠.


복음서를 읽어가다 보면, 예수님은 삼 년 동안 이런 안쓰러움으로 사람들을 만나셨던 것 같아요. 하나하나의 개별적 인간으로 만났든, 무리를 지어 가르침을 듣는 군중으로 만났든 간에요. 그러니 그들이 길 가다 막아서든, 옷깃을 붙잡고 조르든, 배를 타고 따라오든 거절하지 못하고 그들의 청을 들어주시죠. 예수님의 눈은 왠지 항상 촉촉하게 젖어 있었을 것 같기도 해요.


오늘 복음은 지난 주에 읽었던,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어마무시한 기적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앞으로 연중 21주일까지 계속 이어지는 그 다음 내용을 쭉 읽어봐도 '예수님이 생명의 빵이시다'라는 사실을 알리려는 속내로 내용을 구성 편집한 요한복음 사가의 의도가 충분히 읽힙니다.


군중의 입장에서 복음을 다시 읽어 봅니다. 지금 군중에게 중요한 것은 '먹고사니즘'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민생'이죠. 그런데 재산별로 없어 보이는 예수님 지도부가 어떤 정책을 폈는지, 광장에 가득 모였던 사람들에게 포만감을 안겨 줬습니다. 심지어 먹고 남은 것만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네요. 배 부르게 먹었으니 다들 표정도 밝고 힘도 났을 겁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 모두가 만족하게 먹일 수 있는 열쇠를 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도부를 따라가보면 적어도 배는 곯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예수님도 군중들이 자신을 민생을 해결해  사람, 등 따습고 배 부르게 해 줄 사람으로 기대하고 왔다는 사실을 아십니다. 6장 26절에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그런 뜻이죠. 실제로 예수님은 군중이 안쓰러워서 당장 한 끼니라도 배를 채워주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고요.(요한/루카복음에는 없지만 같은 내용이 나오는 마태오/마르코복음에는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라는 표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예수님에게서 민생을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지 못합니다. 다른 정책을 내놓아 보라고 예수님과 담론을 이어가지만 군중들과 예수님의 해결책은 차원이 달라 보입니다. 군중은 현실성 있는 정책, 가시적인 기대를 걸 만한 방법을 요구하지만 예수님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초반까지만 읽히지만 6장 후반부에 가면 결국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간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선거를 열렬히 따라다니다가 선거가 끝난 이후에 지도부에 실망하여 자기가 속했던 정당을 탈당하는 장면이 오버랩되는군요.


가끔 왜 성당에 다니느냐고, 예수님을 왜 믿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신자들에게 물어보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나, '구원'(구원을 죽어서 천당에 가는 티켓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요)을 받기 위해 다닌다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때로는 가족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가기도 하고, 세례 받을 때 약속한 신자의 의무이기 때문에 고해성사 보기 싫어 간다고도 합니다. 입시철이나 선거철이 되면 신앙심이 급 활성화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러나 성당에 간다고 해도 마음의 평화가 보장되거나 천국 티켓을 선구매하는 것은 아니지요. 하루아침에 병이 낫거나 원하는 대학에 척 붙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을 멈춰주지도, 불의한 학살을 중지해 주지도 않아요.(사실 저도 요즘 우리나라 정치 상황을 보면서 '하느님은 뭐 하시나, 저런 사람들 안 잡아가시고.'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이는 하느님과 귀신을 동급에 놓는 생각이라서...) 어쨌거나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다닌다고 해서 우리의 먹고사니즘을 해결해 주신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절대 그런 일은 없으니 떠나려면 떠나라, 하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67절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라고 물으시거든요.


예수님은 돈으로 해결하려는 세상의 지도자들과는 급이 다른 지도자입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 한다는 옛말처럼, '내가 얼마 줄게' 하는 걸로는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수 없음을 우리도, 그들도 압니다. 국민들을 위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안하는 지도자도 민생을 해결하겠다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주는 건 돈이 아니야. 나는 어떻게 해야 영원히 배곯지 않을지, 목마르지 않을지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야. 나는 나 자신을 주겠어. 너희들이 내가 되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같은 마음을 느끼고, 나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되면, 너희들은 먹고사니즘뿐 아니라 죽음 이후까지도 행복할 수 있어. 나는 하느님이니까. 내가 빵이니까.'라는 제안을 하시는 겁니다.


이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군중들도 지금 우리들처럼 알쏭달쏭, 머리를 갸웃거렸나 봅니다. 예수님은 그런 군중들에게 '이건 진짜야, 진짜라니까!'라고 말씀하셨다네요. 그런 말이 어디 있냐고요? 오늘 읽은 성경 본문 중에도 두 번이나 나온다니까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고요. 세상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제안하신 예수님의 민생 해결책을 들었으니, "그 빵을 제게도 좀 주시지요."라고 청해 볼까 합니다. 대전 성심당도, 서울의 나폴레옹 제과도 흉내 내지 못할 생명의 빵을!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Als nun das Volk sah, daß Jesus nicht da war und seine Jünger auch nicht, stiegen sie die Boote und fuhren nach Kapernaum und suchten Jesus. Und als sie ihn am andern Ufer fanden, fragten sie ihn: Rabbi, wann bist du hergekommen? Jesus antwortete ihnen: Wahrlich, wahrlich, ich sage euch: Ihr sucht mich nicht, weil ihr Zeichen gesehen habt, sondern weil ihr von dem Brot gegessen habt und satt geworden seid. Bemüht euch nicht um Speise, die vergänglich ist, sondern um Speise, die bis zum ewigen Leben bleibt. Die wird euch der Menschensohn geben; denn ihn hat Gott der Vater beglaubigt. Da fragten sie ihn: Was sollen wir tun, um Gottes Werke zu vollbringen? Jesus antwortete ihnen: Das ist Gottes Werk, daß ihr an den glaubt, den er gesandt hat. Da fragten sie ihn: Was tust du denn für ein Zeichen, damit wir sehen und dir glauben? Was ist dein Werk? Unsre Väter haben in der Wüste das Manna gegessen, wie geschrieben steht(Psalm 79,24): Er gab ihnen Brot vom Himmel zu essen. Da sprach Jesus zu ihnen: Wahrlich, wahrlich, ich sage euch: Nicht Mose hat euch das Brot vom Himmel gegeben, sondern mein Vater gibt duch das wahre Brot vom Himmel. Denn das Brot, das vom Himmel kommt und der Welt das Leben gibt, das ist Gottes Brot. Da sagten sie zu ihm: Herr, gib uns allezeit solches Brot. Jesus aber sprach zu ihnen: Ich bin das Brot des Lebens. Wer zu mir kommt, wird nie mehr hungrig sein; und wer an mich glaubt, wird keinen Durst mehr ha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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