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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Jul 27. 2024

하찮은 나눔은 없다

연중 제17주일 / 요한복음 6,1-15

어쩌다 보니 오늘도 닭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찹쌀과 대추, 인삼으로 속을 채우고 푹 고아 끓이는 삼계탕은 대표적인 보양식이지요. "치킨이 닭이었어?"라고 할 만큼 대중화된 '치킨'은 남녀노소 좋아하국민 간식이고요.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칼로리를 따지며 음식을 가려먹을 때도 폭폭한 닭가슴살만큼은 챙겨 먹습니다. 감자를 넉넉히 넣고 매콤 자작하게 볶아내는 닭볶음탕은 '닭도리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부터 즐겨 먹던 요리였고요.


삼계탕이든, 치킨이든, 닭가슴살이든, 닭볶음탕이든 빠질 수 없는 주 재료는 닭고기입니다. 셰프가, 혹은 부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에게 어떤 마음으로 차려낼 것인가에 따라 모양도 맛도 다르지만 '닭'을 사용한다는 팩트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례력으로 '나해'를 보내고 있는 올해에 우리는 요한복음에 실린 내용을 읽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서라고 하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복음서에도 실려 있습니다.


네 복음서를 비교해서 모두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공관복음서에 실린 이야기와 요한복음에 실린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어? 복음서 안에서도 내용이 다르다고? 그럼 어느 게 진짜지?'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네 복음서 모두가 다 진짜입니다. 같은 재료로 다른 음식을 차려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즉,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대중적인 치킨집을 차려 양념치킨, 프라이드치킨, 간장치킨을 만들었다면, 요한복음 사가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삼계탕을 냈다고나 할까요. 네 복음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마리, 먹은 사람이 오천 명, 예수님의 감사 기도, 배불리 먹고 남은 열두 광주리의 빵 조각' 등은 요리를 하기 전의 생닭으로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도 평소에 자주 먹던 치킨 말고, 요한복음이라는 맛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말씀에 집중해 보았어요. 바로 9절입니다.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공관복음서에서는 빵과 물고기를 아이가 들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아요. 당시에는 사람 수에도 넣어주지 않던 '아이'가 가져온 오병이어는 그야말로 '작고 쓸모없고 하찮아 보이는 것, 일반적인 눈으로는 하등 소용없어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이가 자발적으로 가져왔는지, 아니면 사도들 눈에 띄어 어쩔 수 없이 내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의 봉헌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배불리 먹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작은 나눔이 예수님의 개입에 의해 큰 기적으로 변화됩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맞지 않고,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이 장면에서 앞으로 다가올 최후만찬을 예시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일을 파스카가 가까운 때라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런 신학적 해석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오늘 복음에서 주일마다 이루어지는 성체성사의 한 장면을 미리 보는 느낌을 받습니다. 빵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는 장면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게는 두 가지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하나는 영육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나눔은 아무리 작아 보여도 결코 작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나눔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예단하며 나눔을 포기하면 하느님이 하실 일을 가로막으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할 일은 내가 가진 빵과 물고기를 아낌없이 내놓는 것이지, 그것으로 몇 명을 어떻게 배불릴 것인지는 하느님께 맡겨드리면 됩니다. 나눔에는 하찮은 것이 없다고 믿으면서요.


또 하나는, 믿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하등 소용없어 보일 밀떡 한 조각이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 육화(肉化)되는 성체성사의 신비입니다. 주일마다, 미사 때마다 이루어지는 이 성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오늘도 내가 보는 눈앞에서 거듭거듭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늘 똑같은 기도문만 반복하는 것 같던 미사 시간에서 조금 다른 맛이 날 것도 같지요?


덧붙임.

젊었을 적에는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요한복음이 참 어려웠어요. 지루한 부분도 많고 알쏭달쏭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언제부턴가 요한복음을 읽으면 공관복음과는 다른, 깊이 숙성된 맛이 느껴지네요.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음식이 달라지듯이 성경 입맛도 바뀌는 걸까요? 입맛 따라 읽어도, 언제나 새로운 영감을 주는 네 개의 복음서는 신약성서라는 식당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애정할 만한 메뉴임은 분명하네요.


오천 명을 먹이시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곧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라갔다. 그분께서 병자들에게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오르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앉으셨다. 마침 유다인들의 축제인 파스카가 가까운 때였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드시어 많은 군중이 당신께 오는 것을 보시고 필립보에게,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이는 필립보를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곳에는 풀이 많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Speisung der Fünftausend
Danach fuhr Jesus über Galiläische Meer, das auch See von Tiberias heißt. Und viele Menschen folgten ihm, weil sie die Zeichen gesehen hatten, die er an den Kranken tat. Jesus aber stieg auf einen Berg und setzte sich dort mit seinen Jüngern. Es war aber kurz vor dem Passafest der Juden. Da blickte Jesus auf und sah, daß viele Menschen zu ihm kamen, und fragte Philippus: Wo kaufen wir Brot, damit diese zu essen haben? Das sagte er aber, um ihn zu prüfen; denn er selbst wußte, was er tun wollte. Philippus antwortete ihm: Für zweihundert Silbergroschen Brot ist nicht genug, wenn jeder auch nur ein wenig bekommen soll. Da sagte zu ihm einer seiner Jünger, Andreas, der Bruder des Simon Petrus: Es ist ein Kind hier, das hat fünf Gerstenbrote und zwei Fische; aber was ist das für so viele? Jesus aber sagte: Sorgt dafür, daß die Leute sich lagern. An dem Platz gab es aber viel Gras. Da lagerten sich etwa fünftausend Männer. Jesus aber nahm die Brote, dankte und gab sie denen, die sich gelagert hatten; ebenso auch die Fische, soviel sie davon wollte. Als sie nun satt waren, sagte er zu seinen Jüngern: Sammelt die übrigen Brocken auf, damit nicht umkommt. Das taten sie und füllten zwölf Körbe mit den Brocken von den fünf Gerstenbroten; soviel hatten die übriggelassen, die gespeist worden waren. Als nun die Menschen das Zeichen sahen, das Jesus tat, sagten sie: Das ist wirklich der Prophet, der in die Welt kommen soll. Als Jesus nun merkte, daß sie kommen würden, um ihm mit Gewalt zum König zu machen, zog er sich wieder auf den Berg zurück, er allein.

*대문사진 출처/픽사베이(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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