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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방구리 Dec 08. 2024

길에 모여 길을 깎는 이들을 위한 복음

대림 제2주일 / 루카복음 3,1-6

[세례자 요한의 설교]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밤 10시 휴대폰 아웃.

잠자리에 들어서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좋지 않은 습관을 고치기 위해, 이번 대림시기에 새로 정한 실천사항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난 한 주간 우리나라를 나락으로 빠뜨린 비상계엄은 선포 소식보다 해제 소식부터 먼저 읽게 되었다지요. 어린이날 공중 쇼를 하는 전투기 소리에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총질하는 영화는 보고 싶지도 않은 전쟁울렁증이 있는 저로서는 모르는 게 약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요, 어제 탄핵투표가 불성립되는 일을 겪고 나니,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대통령 부부한테 있다는 신기(神氣)가 제게도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두 다리 뻗고 잤던 그날 밤 꾸었던 제 꿈이 예지몽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답니다. 제 꿈 얘기 좀 들어보세요.


꿈에서 저는 서울의 북한산 근처 어디쯤에 있었어요.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다 보니 고층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선 동네에서 큰 불이 난 거예요. 불길은 점점 세지고 위층 아래층 할 것 없이 온통 불바다가 되어 가는 시내를 보면서, 저는 헤어져 있는 식구들 걱정이 되어 얼른 집에 가야겠다고 버스를 탔어요. 그런데 불을 끄느라 난리가 난 사람들이 도로로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버스는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히게 되었지요. 저는 버스 안에서 '불을 꺼야 하는데 어쩌지? 내릴 수도 없고. 식구들은 무사할까?' 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데, 글쎄, 거기에 누가 타는지 아십니까?(그 자가 나오지 않았다면, 저는 좋은 꿈인가 싶어 로또를 샀을지도 몰라요.)


여당 대표 한동훈!(헐! 꿈을 막 깼을 때는 제가 개꿈을 꾸었다고 생각했어요,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노랫말이 떠올랐으니까요.) 그 자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버스에 올라타서는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거예요. 저를 비롯해 버스에 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는 마구 따졌죠, 당신이 지금 여기에 있으면 어떡하냐고. 이 사태를 어떻게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그러다 깼는데요, 이 정도면 미아리 고개에 돗자리 깔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제는 꿈에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불을 끄던 사람들처럼 수십 만 명의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 탄핵 가결을 외치는 광경을 뉴스로 지켜보았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지 못해 발을 구르던 꿈속의 저처럼 현실의 저도 머리 하나를 보태지 못함을 미안해하기도 하고, 나라의 명운보다 당리당략과 사욕으로 똘똘 뭉친 집단에 대한 분노와 절망에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습니다.


문재인이 미워 윤석열을 찍은 대가, 나라를 파랑과 빨강으로 두 동강 낸 대가, 경제적으로 잘 살게 해 준다면 지도자의 인성 따위는 굳이 따지지 않았던 대가, 세대와 세대를 가르고,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부자와 빈자를 가르고, 보수와 진보를 가르고, 서로를 향해 총질하고 비난한 대가. 내가 찍지 않았다고 그 책임을 모면할 수 없어, 결국은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하는 혹독한 대가. 2년 반 동안 더욱 깊어진 분열의 골짜기, 더욱 높아진 적대감을 메우고 깎아야 하는 과제가 암담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이리 어려운 거였어,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내"는 일이요. 푹 파인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들을 낮게 깎는 일, 굽은 데를 곧게 하고 거친 길을 평탄하게 만드는 일이...'


오늘 복음 초입에는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시대를 알려주는 구체적인 지역과 실명이 나옵니다. 옛날이야기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시작되곤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해도 된다는 거지요. 그러나 어떤 시대와 사람 이름을 콕 집어 쓰는 것은 사실성을 강조하기 위해섭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자 예수님의 탄생에 앞서 그 길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적으며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로 시작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 이 책에 기록될 일들은 허구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며, 믿거나 말거나 해도 되는 신화가 아니라 진짜 일어났던 실제상황이며, 반드시 믿어야 하는 구세사라는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고 촉구합니다. 이는 새로운 요구가 아니라, 옛 예언자들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 길이 쉽지 않음도 말합니다. 불도저도 없던 시대에 골짜기를 메우고 산을 깎으라 하는 요청은 굉장히 긴 시간을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일임을 시사합니다. 이 골짜기만 메우면 될까 했는데 눈앞에 또 다른 골짜기가 나타날 수도 있고, 힘들게 산 하나를 깎고 나니 그보다 더 큰 산이 눈앞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구원은, 희망은 늘 기대했던 것보다 늦게 온다고 여겨지니까요.


세례자 요한이 선포하였다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die Taufe der Buße zur Vergebung der Sünden)'라는 표현은 조금 애매하게 들립니다. '죄의 용서'라니, 남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인지, 내 죄를 용서받는다는 말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이는 이어지는 이사야 예언서의 인용문과 연결지어 읽으면 뜻이 더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산을 깎는 일의 궁극적 목표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기 위함이듯,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궁극적 목표는 '죄의 용서'입니다. 나 자신이든 남이든 죄가 있으면 구세주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는 죄를 지었으니 용서를 빌라고 알려줘야 하고,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깊이 통회하는 것이 빛을 맞이할 준비라는 거죠.


지난 주간에 대통령이라는 자가 벌인 무도하고 끔찍한 일은 우리나라 역사에 새겨지고, 오명은 세대가 계속되어도 지워지지 않고 후대에 길이길이 남게 되겠지요. 그와 함께 굽은 길을 곧게 하려는 노력, 사익이 아닌 공공의 선을 위해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시민들의 함성도 세례자 요한의 설교처럼 기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그러모아 오늘 복음을 다시 써 봅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길을 깎기 위해 길에 모인 시민들을 위한 '촛불시민 복음'입니다.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던 윤석열 치세 제삼년, 한덕수가 대한민국 총리로, 오세훈이 서울시 시장으로, 윤석열의 검찰 후배 한동훈이 집권여당 대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촛불 시민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시민들은 한강 부근의 광장과 우리나라 지방 곳곳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장에서 외치는 이들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해마다 성탄절에는 주님이 오셨습니다. 이천 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습니다. 춥고 힘든 시간을 인내하며 주님의 길을 준비하면 이 나라에도 주님이 오시겠지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하셨으니!


[Das Wirken Johannes des Täufers. Seine Gefangennahme]

Im fünfzehnten Jahr der Herrschaft des Kaisers Tiberius, als Pontius Pilatus Statthalter in Judäa war und Herodes Landesfürst von Galiläa und sein Bruder Philippus Landesfürst von Ituräa und der Landschaft Trachonitis und Lysanias Landesfürcht von Abilene und als Hannas und Kajaphas Hohepriester waren, da geschah das Wort Gottes zu Johannes, dem Sohn des Zacharias, in der Wüste. Und er kam in alle Länder am Jordan und verkündigte die Taufe der Buße zur Vergebung der Sünden, wie im Buch der Reden des Propheten Jesaja geschriben steht(Jesaja 40,3-5): "Es ist die Stimme eines Predigers in der Wüste. Bereitet dem Herrn dem Weg und macht seine Steige eben! Alle Täler sollen erhöht werden, und alle Berge und Hügel sollen erniedringt werden; Und was krumm ist, soll gerade werden, und was uneben ist, soll ebener Weg werden. 'Und alld Menschen werden den Heiland Gottes sehen."


*대문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브런치 작가 @위대한 일상을 그리는 시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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